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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Mar 29. 2022

[여행] 시애틀 3~5일차, 걸음마

공은 잘 맞냐고 묻지 마세요


넌 왜 담배 안 펴? 한번도 안 펴봤어?



응, 담배 살 돈이 없어서 못 폈어



요즘은 흡연 인구가 많이 줄었지만 십수년전 누군가 내게 왜 흡연을 하지 않냐며 의아하게 물을 때는 늘 저렇게 답했다.

웃자고 하는 대답이라기보다는 솔직한 마음이었다.

학창 시절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담배를 매일 한갑씩 사게 되면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이 머릿 속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군대 막내 시절, 동기들은 모두 담배를 펴서 이쁨 받고 따라다니는데 난 그렇지 못해 멀뚱멀뚱 있을 때 심각하게 고민하다 그만 포기했다.

보급 담배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돈,

골프도 그런 이유로 시작하지 않았었다.

채를 비롯한 각종 장비 의상들을 사야 되고, 매번 골프장에 가면 그린피를 내야되는 등 잘은 모르지만 귀동냥으로 듣는 골프 비용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온전히 날 위해 쓰는 비용이 한달에 30만원은 했을까,

술담배도 안 하고 취미도 딱히 없고 회사에서 점심도 거르기 일쑤고 저녁 모임도 딱히 안 가지는 나로서는 돈을 쓸래야 쓸 일이 없었다.



그런 내가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아니,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예기치 않게 골프가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뉴욕에 도착해서는 조금 후회했다.

막상 골프백을 가져오긴 했는데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시애틀이나 la에서 쳐봤자 두어번일텐데 대체 왜 이 고생을 하며 가져온걸까 스스로 자책도 했다.




72홀,

시애틀에 5일동안 있으면서 거쳐간 홀 수,

두어번은 무슨, 매일 쳤다.

심지어 어제는 오전 오후 두번이나 나갔다.

이 곳은 정말 한국에 비하면 골프치기 참 좋다.

뛰어난 접근성, 저렴한 그린피, 온화한 날씨, 친절한 사람들

어느 하나 모자란 것이 없었다.



도장깨기 하듯 5일 동안 골프장 네곳을 다녀온데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이 낯선 이들과 함께 4시간동안 라운딩을 두번이나 돌았다.



이렇게 골프를 치고 호텔에 들어와 씻고 누우면 세상 좋으면서도 불안함이 슬며시 들었다.

돌아가선 어떡하지, 어떻게 또 살아가야 하지, 매일 앉아서 욕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가겠지

얼마나 많은 일과 일 같지도 않은 일 그리고 일어나지 않았음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못 뵌지 제법 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유독 귓전에 맴돈다.

going through, going through


언젠가 음울한 마음 거친 생각 마저도 시나브로 옅어지리라,

언제나 제자리 걸음 같은 골프 실력도 시나브로 나아지리라,


나아가리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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