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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Mar 29. 2022

[여행] 시애틀5일차, 실패

맑든 흐리든 비오든, 너의 모든 날들이 빛났다.

처참하게 실패한 여행이었다.

  철없이 시애틀에 기대했던 나의 확증편향이 엇나가지 않을까,

너의 오점을 찾겠단 심정으로 5일을 지냈는데 

난 실패하고 말았다.


뉴욕 6박 - 시애틀 4박 - 엘이이 5박의 여행,

역시 사람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지금 다시 내게 계획해보라고 한다면,

뉴욕 3박 - 시애틀 9박 - 엘에이 3박의 일정으로 했을 것이다.



시애틀 2일차, 난 이미 실패했음을 직감했고,

4일차에 일정을 바꿀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여름에 꼭 다시 와야겠단 생각을 하며 겨우 정신을 움켜 잡았다.





누군가는 시애틀을 떠올리며 나의 이런 설레임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이해 못할 거다.

결국 저마다 자신과 맞는 도시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쉽사리 설명하기 어렵다.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도 파이크 퍼블릭 마켓, 스페이스 니들 정도가 전부인 조그마한 도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많다.


레이어니어 자락에서 캠핑하며 불멍도 해보고 싶고,

한시간 거리에 있다는 스키장에서 신나게 보드도 타보고 싶고,

아직 못 가본 숱한 골프장들도 하나씩 다 가보고 싶고,

부둣가에 앉아서 한 없이 호수같은 바다를 보며 세월을 씻어 흘려 보내고 싶다.


아마도 한국에 돌아가면 난 가장 먼저 비엔나행 티켓을 취소할 거다.

그리고 시애틀행 비행기 티켓을 끊임없이 살펴보겠지,


쉬이 발이 닿기 힘든 곳에 이런 애틋함을 두고 온다는 것,

내 감정의 늪은 불안, 초조, 우울, 염세 이 따위 것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참 다행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타려고, 일부러 타지 않았어. 바로 너와 함께 타려고 말이야.



그녀는 수줍게 말했다.

런던에서 일년간 유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런던아이를 먼발치에서만 바라봤단다.

그녀를 추억 속으로 떠나보낸지 어느덧 십여년의 세월도 넘게 훌쩍 흘러가 버렸지만, 결국 연분홍빛 청춘의 아련한 기억은 그녀와 함께 사라질듯 사라지지 않고 잔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누군가 런던아이를 스치듯 말하면, 파블로프의 견공 마냥 그녀의 전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스페이스 니들,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지상에서 돌았다.

언젠가 만날, 물론 아직 평생 만나지 못 한 그녀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풋풋한 설렘에 두 볼이 발그레해지며 유유히 아래를 맴돌았다.


나만의 약속이 될지언정,

이런 식으로라도 다시 돌아오기를 나지막히 속삭여 본다.


안녕,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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