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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May 03. 2020

후자다 교수의 정체

교수인가 미치광이인가

오늘 밤, 바로 한 시간 전에 나는 후자다 교수를 우연히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나는 친구를 만나 술을 한 잔 걸치고 밤 10시나 돼서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빽빽한 지하철 내에서도 빈자리가 있길래 덥석 그 자리에 앉았는데 어럽쇼 바로 내 앞에 후자다 교수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다.

이 사람과 나는 통성명을 한 적은 없지만 한때 같은 시간에 등하교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당시 나는 어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아침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하루 종일 공부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후자다 교수 역시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대학에서 하루를 보내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 우리는 도서관에서, 지하철에서, 학생식당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얼굴을 마주쳤다.

그는 150센티가 될까 말까 한 작달막한 키에 배가 약간 튀어나온 피부색이 가무잡잡한 동양인이다. 50대 초반 정도. 동남아시아 사람 같지만 남아메리카 인디언일 가능성도 있고, 의외로 하와이인이나 뉴질랜드 마오리족일 수도 있다. 어디서 만나나 그는 늘 엄숙한 표정이었다. 웃는 걸 본 적이 없고 아는 사람과 얘기하는 걸 본 적도 없다.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을 더 이상하게 보이게 하는 소품은  검은색 색안경이다. 그는 밤낮,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이 색안경을 끼고 다녔다. 그리고 아무리 더워도 검은색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다녔는데, 그 정장이란 것이 촌 어르신들이 1년에 두어 번 남의 잔치에 가느라 행차할 때 입는 그런 후줄근한 정장이었다. 그런 정장에 어울리게 늘 손에 들고 다니는 건 검은색 가죽 비즈니스 가방과 슈퍼마켓에서 30센트에 파는 비닐봉지. 교수라는 신분에 걸맞게 그 가죽 가방 안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책들이 가득했다.

내가 그를 안 지는 4년이 됐다. 하지만 남편 말로는 자기가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그를 학교에서 봐왔으니 그는 최소 10년이 넘게 대학엘 다니는 것이었고 우리 시어머니에 따르면 그가 대학에 출현한 지는 10년이 아니라 기억에도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됐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지하철 안에서 후자다 교수를 만나면서 그가 후자다 씨라는 것과 교수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입은 까만색 양복 깃에 ‘후자다 교수’하고 흰 종이에 컴퓨터로 적은 명찰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명찰로 말하자면(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가 교수로서 무슨 세미나에 참석하고 난 이후 떼는 것을 잊어버려 거기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교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고의성이 짙은 명찰 같아 보였다. ‘Prof. Husada’라고 적힌 밑으로 일본말도 아닌, 그렇다고 태국말이나 인도말도 아닌 손으로 적은 이상한 글자들이 적혀있었는데 그 문자가 실제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자기의 직함과 성명을 의미하는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아무리 교수라는 명찰을 달고 다닐지라도 나는 후자다 씨가 교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뿐만 아니라 그 대학에 다니는 사람 중 누구도 그를 교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그가 강의를 하거나 듣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대신 그는 늘 비닐봉지와 무거운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며 교수 연구실 대신 시민들에게도 개방되는 대학도서관에 앉아 있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빛 좋은 여름이면 대학 캠퍼스에서 낮잠을 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인간대 인간으로서 그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오랫동안 기억에서 멀어졌던 그가 오늘은 교수라는 명찰을 달고 내 앞에 나타났으니 더더욱.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는 젊은 날에 독일로 유학길에 올랐다 영영 돌아가지 않고 평생을 대학 근처를 맴도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고, 교수가 되려고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는 아무도 모르게 정말 교수 노릇을 하면서 일부러 미친 척 교수 명찰을 달고 다닐 수도 있다. 발상을 전환해 생각해보자면 그는 어쩌면 피터팬 교의 교인이거나 교주로서 그 색안경을 끼고 다니며 멀쩡한 사람들을 농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우리는 목적지인 긴 뿔 시장(Langen Horn Markt)에 도착했다. 후자다 교수와 나는 함께 긴 뿔 시장 역에 내렸다. 나는 후자다 씨를 관찰하기 위해 일부러 역사를 빠져나가지 않고 꽃집 앞에 서서 바나나 나무를 관찰하는 척하고 그를 기다렸다. 무릎이 안 좋은지 계단이 아닌 엘리베이터로 지하철 계단을 올라온 그는 느린 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10초 증명사진 부스 앞에 가방과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양복 주머니에서 살이 촘촘히 박힌 파란 빗을 꺼내더니 반이나 벗겨진 그의 곱슬머리를 곱게 빗었다. 자기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본 그는 다시 가방을 들고 역사를 빠져나갔다.

그는 지하철역을 나와 왼쪽으로 곧장 걸어 나갔다. 나는 그를 미행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의 처지가 인간적으로 너무 궁금하였다. 이리하여 별생각 없이 간격을 두고 그를 따라 한 500미터쯤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가만 생각해보니 밤 10시가 넘은 이 시각에 술이 한 잔 돼서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러고 밤거리에 혼자 좀 서있다가 남편에게 전활 걸었다.

10분 내로 집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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