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반케 부인의 빈 아파트에서
남의 유품 정리하기는 또 처음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내가 시어머니를 통해 반케 부인을 알게 된 것은. 시어머니 잉그리드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면서 장애인, 노약자, 전쟁난민, 망명 신청자 등의 사회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다. 작게는 속옷이나 샴푸를 사다 주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적인 일을 해결하는 일, 보호자가 없는 사람의 장례절차를 밟는 일 등이 우리 시어머니의 주요 업무 되겠다.
당시 반케 부인은 잉그리드의 고객으로, 내가 만났을 당시 일가친척 하나 없이 홀로 남겨진 80 노인이었다. 그 날은 잉그리드가 반케 부인이 있는 요양원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나는 잉그리드가 만나는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그를 따라 나섰다.
반케 부인은 창문이 딸린 1층 1인실을 사용하였다. 방은 약 25 평방미터로 작은 호텔방 구조와 비슷하였다. 싱글 침대 하나, 탁자 하나, 의자 둘, 화장실, 옷장. 반케 부인의 침대는 창문 바로 옆에 있었고 부인은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목소리가 큰 잉그리드는 부인이 자는지 깨어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말을 했다. 듣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하면서 사들고 온 물건을 정리 정돈하였다. 그러고는 사무실로 가봐야겠다며 휑하니 사라졌다. 나를 그 방에 혼자 남겨두고.
갑자기 조용해진 공기.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이 조용한 공기가 싫어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나 싶어 나는 머릿속으로 독일어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문법에 맞게, 동사의 어미를 틀리지 않게, 형용사 변화도 틀리지 않게. 그러나 나는 스몰토크에 약한 사람이다. 낯을 가리는 사람이다. 할 말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눈 감고 누운 생면부지의 저 노인에게 할 말이 있겠는가.
입을 다문 채 멀리서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이 든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낯선 사람이 들어왔는데 저렇게 흉측하게 입을 하 벌리고 눈을 감고 있을까. 가까이 가서 반케 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80 노인답게 생겼다. 할머니들에게서 주로 볼 수 있는 저승점이 얼굴에 단 한 점도 없어 피부가 고와 보였다. 손가락 역시 핏기 하나 없이 하얫는데 내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 손가락처럼 손톱이 두껍고 주름이 많았다. 나의 친할머니는 손톱과 발톱이 너무 두꺼워 손톱깎이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반케 부인의 두꺼운 손톱은 누가 깎아주려나. 손톱이 튀지 않게 조심해서 깎아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무례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내 손바닥을 부인의 손등에 대어 보았다.
자고 있으려니 했던 반케 부인이 내 손을 슬쩍 뿌리쳤다. 눈은 계속해서 감고 있는 채로. 잠든 것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시치미를 떼고 침대에서 걸어 나와 멀찍이 서 있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 뻘쭘했던 시간들은 잉그리드가 돌아오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잉그리드는 또 사무실에서 있었던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을 일들을 누구나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얘기했고, 반케 부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것이 마지막 작별인사가 되었다. 그 뒤 1,2주 정도가 지났을까, 반케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노환이었겠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폐렴이었다. 반케 부인이 죽었으므로 부인의 아파트를 비워줘야 한다. 잉그리드는 따로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였으므로 나는 그녀를 도와 부인의 아파트를 정리해 주기로 했다. 버릴 것과 기증할 것을 모아 박스에 정리를 해놓고 정리가 끝나면 수거해갈 업체에 연락하고 수거가 끝나면 청소업체를 불러 청소하는 일이었다. 나는 잉그리드로부터 반케 부인의 집 열쇠를 받았다.
비 내리는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반케 부인의 아파트로 향했다. 나는 죽을 날을 며칠 앞둔 사람을 만난 것도 처음이려니와 남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일 역시 평생 해본 일이 없었다. 남의 집 물건들을 훔쳐보는 일이 공식적으로 허락되었다고나 할까. 기분이 묘했다.
부인의 아파트는 아주 오랫동안, 말하자면 50년 이상 수리를 안하고 방치한 아파트 같았다. 문을 열면 좌우로 긴 복도가 있고 오른쪽 복도 끝에 주방, 그 옆으로 화장실, 중간에는 거실, 그리고 맨 왼편에는 침실이 있다. 바닥은 나무 바닥이다. 아파트는 약 45 평방미터 정도 돼보였다. 주방은 너무나 오래돼서 꼭 2차 대전 영화에나 나올법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집안에 있는 가구들은 하나같이 싸구려로 반케 부인의 궁색한 살림살이를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복도에 쌓아 놓은 이삿짐 종이박스를 하나하나 열어 쓰레기를 분류하고 옷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옷장은 본 적이 없다. 같은 종류의 옷들만 옷장에 수두룩 했다. 반케 부인은 한 가지 종류의 옷만 입는 사람 같았다. 바지는 똑같은 상표의 청바지가 20벌도 넘었고, 상의로는 비슷한 색깔의 체크무늬 남방이 20벌이 넘게 걸려있었다. 속옷도 유기농 면으로 만든 밑위가 긴 같은 모양의 팬티와 러닝셔츠가 여러 장 있었고 아직 포장지도 뜯지 않은 같은 상표의 속옷들로 옷장이 넘쳐났다. 신발도 한 가지 상표의 편한 노인화가 주를 이루었는데 같은 신발이 서너 켤레나 있었다. 강박이 있으신가?
옆 옷장을 열어보니 이와는 취향이 좀 다른 옷들이 많다. 인조가죽 코트, 은갈치색 재킷, 여러 종류의 이태리산 고급 부츠들과 알이 아주 큰 올드 패션 선글라스들, 엑스트라 스몰 사이즈의 치마와 바지들. 이 집에 반케 부인 외에 젊은 여자가 살았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 짐을 정리하다 그 젊은 여자가 누구였는지 알게 되었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다 엑스트라 스몰 치마 주인공의 서류들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사진이 붙은 이력서, 사진이 붙은 지하철 월정기권, 그리고 각종 증상이 적힌 병원 서류들, 각종 세금고지서, 월세 계약서 등. 그 서류들은 이미 꽤 시간이 지난 것들이었다. 이런 걸 왜 버리지도 않고 여적지 뒀을까...
반케 부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력서에 적힌 딸의 이름을 읽어보았다. 레베카 반케. 빨강머리. 하지만 원래 머리 색깔은 내 짐작에 갈색. 유럽인들은 주황색 머리 색깔을 빨강머리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에 주로 분포되어 사는 빨강머리들은 특징이 있다. 얼굴빛이 희고 주근깨가 있으며 곱슬이다. 모두 유전자 상으로 상관관계가 있는 특징들이다. 레베카의 빨강머리가 천연 빨강머리가 아닌 이유는 이런 빨강머리들이 가지는 특징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색머리 레베카는 머리를 빨간색으로 물들임으로써 조금 더 생기 있게 보이고자 했을까? 그러나 그 얼굴은 그다지 생기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증명사진용 표정을 하고 있는 탓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빨강머리 레베카 반케. 사람 이름과 얼굴을 알았다는 것은 뭐랄까, 그 사람이 내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레베카의 이름과 이력서에 붙여진 사진을 보고 나자 그녀가 내게 부쩍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빨강머리를 하고 엑스트라 스몰 사이즈의 치마를 입고 알이 크고 둥근 선글라스를 끼고 이탈리아산 고급 가죽부츠까지 신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주 스타일이 좋은 여자였다.
이력서에 의하면 반케 부인의 딸은 나보다 1살이 많았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괜찮은 직장을 갖지 못해 최저임금 수준의 직장을 전전했고, 군데군데 휴직기가 많았으며, 그러다 직업교육까지 받았으나 중간에 중퇴한 것으로 나왔다. 나와 나이가 같다면 아직 죽지 않았을 확률이 높은데 왜 아픈 엄마의 장례식을 챙기지도, 유품을 정리하지도 않는 걸까. 이민을 갔을까? 피치 못한 이유로 부모와 연을 끊고 살까? 이런 생각을 하며 레베카의 서류들을 펼쳐놓고 읽어보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철렁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남의 개인사를 낱낱이 읽다가 벌어진 일이라서 그랬을까,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흡사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몸을 움츠렸다. 혹시 레베카가 왔나? 아니면 여호와의 증인이나 배송직원? 일단 숨을 죽이고 기다려 보았다. 한 5초 정도 지났을까. 밖에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밖에는 한 중년의 남자, 여자와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그중에 중년의 남자가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집 내놓으셨죠? 부동산인데 집 보러 왔어요."
부동산이라니, 그나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일중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타부타 설명을 안 해도 돼서. 나는 집을 구경하시라고 하고는 다시 거실로 들어가 짐을 정리했다. 옆방에서 부동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수리 안 한 지가 오래돼서 집이 좀 낡았는데요, 이사 나가는 대로 집주인이 집수리 싹 다 해주기로 했어요. 주방가구도 새 걸로 들여놓기로 했답니다. 대학까지 자전거 타고 15분 걸리니까 교통이 좋은 편이죠. 꼭대기 층이라 오르내리기가 좀 불편하긴 해도 근처에 이 월세로 이만한 집 찾기가 힘들어요."
이만한 집 찾기 힘든 거 좋아하시네...
나라면 이 집에 안 들어온다. 엘리베이터 없는 꼭대기 층에(5층) 내가 보기로 이 집은 원래 사람 살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옥상 창고 용도로 지어졌다가 인구가 급증하자 집으로 급 개조했다. 4층까지는 계단이 시멘트로 되어있는데 4층에서 5층까지는 나무계단인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 근처에는 지은 지 100년 넘은 유겐트슈틸 하우스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꼭대기 층을 창고로 사용한다. 이런 꼭대기층 집은 단열이 안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고. 아무리 월세가 싸더라도 사람 살 데가 못된다. 이런 괘씸한 집주인이 있나. 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그렇지, 어떻게 연로한 80 노인을 이런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단열도 안 되는 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게 방치했을까...
사람이란 게 둘 중 하나에 편들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아는 쪽 편을 들기 마련인 모양이다. 나는 일방적으로 반케 부인 편을 들며 낯 모르는 집주인을 속으로 욕했다.
어쨌든 부동산 업자가 다녀가고 나는 계속해서 짐을 싸던 중 조용한 집에 이번엔 휴대폰이 울려 또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 잉그리드가 전화한 것이었다. 뒷북을 치신다. 오늘쯤 부동산 업자가 다녀 갈 테니 오면 문 열어 주라고 얘기하는 걸 깜빡했다고. 이미 다녀갔다고 하니 일은 잘 되냐고 묻는다. 물건이 많지가 않아 오늘 저녁때까지 정리가 다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혹시 반케 부인한테 딸이 하나 있냐고 물어보았다. 딸이 하나 있긴 있었단다. 그런데 혈육이라고 하나인 그 딸이 우울증과 정신병으로 고생하다 서른인가에 자살을 해서 죽은 후로는 반케 부인은 오가는 친인척, 가족 하나 없이 홀로 말년을 보냈다고 했다.
허무한 인생이다. 자식이 죽은 후 모진 세월을 용케도 견뎌 냈더니 그 최후는 요양원에서 이렇게도 외롭게 끝나는구나. 죽으면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흔적도 없이 끝나는구나. 동물이 죽으면 그 시체를 하이에나가 먹고 남은 것은 또 들쥐나 작은 동물들이 먹고 마지막으로 박테리아가 남은 것들을 처리해 주는 것처럼 사람 사는 곳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죽음 후 유품들은 어떠한 경로를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로 나눠지거나 버려지고, 생전에 살았던 집은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살게 되며 결국 그 자취는 무덤 외에 아무 곳에도 남지 않게 된다.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라는 단편소설을 읽다 보면 맨 마지막 부분에 '잘 썩고 있을까?'라는 독백이 나온다. 생면부지인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겪지는 못하고 편지로만 접한 주인공이 아버지의 삶을 상상해 보며 마지막으로 읊었던 말. 반케 부인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그날 밤, 나는 땅 밑에 홀로 누워 있을 반케 부인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잘 썩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