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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May 03. 2020

기네스 씨는 가난한 건물주

딱 내 스타일, 건물주라 그런 건 아니고...

우리  회사의 분위기 메이커 기네스 양은 터키 이민자 2세이다. 대부분의 터키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기네스 양의 아버지도 70년대 독일로 취업이민을 와서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인생을 시작하신 분이다. 그분의 터키에서의 학력과 경력은, 중졸에 오렌지 밭 지킴이 되겠다. 기네스 양은 자주 아버지의 무용담을 내게 얘기해주는데 그중 이 이야기처럼 신이 난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말이지, 키는 작지만 싸움을 얼마나 잘하시는지 몰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다나 (터키 동남부에 있는 큰 도시로 시리아와도 가깝고 케밥으로 유명한 도시) 근처의 시골마을에서 오렌지 밭 지키는 일을 하셨는데, 한 번은 밭을  지키던 도중 야밤에 개떼들이 나타났대. 그땐 밭에 딸린 작은 오두막에서 밤낮으로 살았거든. 너도 알다시피 터키에는 예나 지금이나 개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잖아. 세상 물정 모르는 열대여섯 살짜리가 뭘 하겠니.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혼자서 몽둥이로 개떼들을 쫓아내고, 그중 대장에 해당되는 놈한텐 피가 철철 나는 아주 심한 부상을 입혔대. 그 이후로는 동네 개들한테 소문이 났는지 개떼가 우리 아버지가 지키는 오렌지 밭으로  얼씬거리지 못했지. 오렌지 밭 주인이 우리 아버지를 아주 믿음직스러워했대."

그림:미나 파우쉬(내 딸)


나는  기네스 씨의 용감한 행적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용감하게 오렌지 나무를 지킨 경력은 독일과 같은 산업사회에 편입하기엔 썩 좋은 직장경력은 되지 못한다. 양치기가 무서운 늑대로부터 양들을 잘 보호한들, 동네에서  가장 빠르게 소젖을 짜는 재주가 있은 들, 밭 한 고랑을 남들보다 빠르게 메는 재주가 있은 들, 그런 경력은 이 산업사회에서  반기는 경력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기네스 씨가 독일에 와서 가진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은 택시 기사 되시겠다. 이 분은 평생을  택시기사로 일하시면서(부인은 가정주부) 자식 넷을 낳아 길렀다. 중졸의 터키 이민자, 평생 택시기사 경력, 홀벌이.  이 정도만 가지고도 기네스 양의 가정형편을 짐작할 수 있는데, 사실 그 집안의 가정형편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상위층에 속한다.  기네스 씨께서는 이재에 밝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기네스 씨는 건물주이다. 프랑크푸르트 서쪽에 위치한 조용한 주택가에 여섯가구 구축 빌라를 2000년 경에 매입했다. 프랑크푸르트의 집값이 독일에서도  1,2위를 다투는 걸 생각하면, 게다가 2010년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걸 감안하면 그분은 부동산 부자라고 볼 수 있겠다. 억대 연봉의 우리 회사 젊은 이사도 프랑크푸르트에 집을 단 2 채만을 보유하고 있는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기네스 씨는 터키에도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하고 계시다. 70년, 80년대 종잣돈을 어렵게 마련하신 후, 터키 리라 대비 독일 마르크의 환율이 좋을 때  터키에 건물을 사서 그 반대 상황일 때 되팔기를 반복하여 지금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계신 것이다. 물론 종잣돈을 마련하기까지 그분과 가족들의 뼈를 깎는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가 상속녀 기네스 양에게 부러운  눈길을 보낼 때마다 기네스 양은 눈을 흘기며 제발 그런 소리 말라고 한결같은 대답을 해온다.


"우리  아버지가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어디서 살았는지 아니? 호텔비가 아까워서 마인강변에 있는 벤치에서 대. 우리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가족끼리 식당에 가서 밥 먹어본 적이 드물어. 우리 아빠는 영화관이나 콘서트장에  가본 적이 아마 평생 한 번도 없으실  걸? 방학 땐 남들 다 가는 휴양지에 가본 적도 없고 늘 터키에 있는 친척집에서 놀다가 왔어. 심지어 비행기값을 아낀다고 독일에서 터키까지 자동차를 타고 간 적도 여러 번이야. 무려 왕복 6000 킬로미터를. 성인이 됐을 때도 내가 터키에 있는 식당에서 팁을 1유로 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몰라. 두고두고. 우리 아빠는 터키에서 팁으로 10센트 이상 준 적이 없는 분이셔. 아무리 리라화가 내렸다지만 10센트는 터키에서도 팁으로  내놓기엔 부끄러운 돈이거든. 정말 창피해."


 "그래도 너의 아버지는 건물주잖아. 이제 퇴직하셨으니 노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즐길일만 남았겠다. 너무 부러워."


"즐겨?  뭘 하고 즐겨? 우리 아빠는 평생 취미생활도 해본 적이 없고 인생 자체를 즐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젊어서 너무 절약만 하고  살아서 지금은 시간이 있어도 뭘 해야 할지 모르셔. 돈이 아무리 있어도 오락이라곤 종일 텔레비전만  보시는걸. 돈 아까워서 비싼 옷도 못 사 입고 식당도 안 가신다니까. 그게 인생을 즐긴다고 할 수 있을까? 즐기는 것도 배워야  하는 것 같아. 우리 아버지 보면 젊어서 못 즐긴 사람은 나이 들어도 못 즐기는 것 같아."


기네스 양의 말마따나 시대가  달라지긴 했다. 예전엔 허리띠 졸라 메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사회의 본보기가 되었으나 요즘처럼 물자가 흔한 세상엔 자신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소비하는 사람이 인싸라고 각광받으며 돈도 많이 번다. 허나 나도 어렸을 때 새마을 운동을 겪은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인플루언서 타이틀을 달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명품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보다는 기네스 씨처럼 근검절약하는 자수성가 형이 좋다.


한 번은 기네스 씨가 회사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다리를 다친 딸을 데리러 온 거였는데 생김새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당시 나는 몽둥이로 개떼를 때려잡으신 터프하신 분, 돈을 절약하기 위해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마인 강변 벤치에서 여러 날을 주무신 용기 있는 분은 어떻게 생겼을까 기대를 했는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작은 키에 머리에 흰 눈이 내려앉은 듯한 백발을 하고 계시다. 얼굴은 힘들게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 답지 않게 인상이 부드러우시다. 목소리도 조곤조곤 조용하시고 어디를 봐도 개떼를 때려잡은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중졸이라지만 박사 못지않게 인텔리전트한 그 모습.  그런 의외의 모습이 내게는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뿐만 아니다. 아... 여섯 가구의 빌라 건물주 이신 분이 10년은 족히 탔을 법한 오펠을 몰고 다니신다. 매력적이다. 기네스 씨가 딸과 함께 회사  문밖을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아, 딱 내 스타일이신데...

건물주라서 그런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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