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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May 18. 2020

독일판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독일인의 이름과 성씨 이야기

한국에 널리 알려졌다시피 서양에서는 결혼을 하면 아내는 남편 성을 통상적으로 따른다. 예전엔 그랬다.  요즘은 사회가 많이 달라져서 결혼한 여자도 자기의 혼전 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결혼한 남자도 부인의 성을 따르는 경우도 있고, 부부가 혼전 혼후 성을 둘 다 가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엄마 성을 따르거나 아빠 성을 따르거나 법적으로 상관이 없다. 다만 아이의 경우 양쪽 부모의 성씨를 다 가지는 건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한고 하니, 애가 양쪽 부모의 성을 다 가지면 다음과 같은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비드라는 아이가 있고 치자. 엄마 아빠 성을 다 물려받아 David Pausch Lünke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하자. David Pausch Lünke 가 역시 엄마 아빠 성을 다 물려받은 아가씨 Maria Schmidt Maier와 결혼하여 두 사람은 둘의 성을 다 가지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면 다비드의 공식적인 이름은 David Pausch Lünke Schmidt Maier가 된다. 혹시 다비드가 두 번째 이름 Jochen과 세 번째 이름 Paul이 있는 아이라면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David Jochen Paul Pausch Lünke Schmidt Maier가 된다. 이것은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사동방사 워리워리 세프리카와 다를 바가 뭐가 있는가? 부르다 숨 넘어갈 이름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성씨 중 하나만을 물려받을 수 있다.


독일에선 결혼과 함께 이렇게 자유롭게 성씨를 바꿀 수 있으므로 사람의 성씨만 봐서는 그 사람이 독일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폴란드 사람인지, 에티오피아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사촌처럼 왕래하는 우리의 이웃 느구쎄 가족이 있다. 마리아는 폴란드 인인데 아프리카 에리테리아 남자 아마누엘와 결혼하여 '느구쎄'라는 성을 가지고 있다. 폴란드 인 마리아를 볼 때마다 '느구쎄'라는 성씨가  정말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아래 사진을 한 번 보시라. 저 여인이 '느구쎄' 처럼 생겼는가?  '스바롭스키'라면 모를까.

우리 옛 이웃 느구쎄 가족. 블로그에 글 올릴 거라고 했더니 최근 사진을 보내주었다.



한 회사 동료는 베트남 남자와 결혼하여 베트남의 성씨인 Nguyen(뉘옌)이라는 성씨를 가지게 되었다. 결혼 후 회사로 출근하더니 단박에 아웃룩 이메일 주소까지 Nguyen으로 바꿨다. 하루아침에 수 씨에서 부르기도 쉽지 않은 '뉘옌'씨로 바뀌다 보니 어찌나 어색하던지... 나는 Frau Nguyen이란 말이 입밖에 안 나와 머뭇거리는데 다른 동료들은 바뀐 성씨를 어색해하지도 않고 척척 잘만 부렀다. 나의 한국 친구 하나는 독일인과 결혼하자마자 우물쭈물하지도 않고  씨에서 푹스으로 하루아침에 갈아탔고, 여권의 성씨를 비롯한 모든 서류와 은행계좌의 이름까지 싹 다 바꾸었다.


그럼 이혼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스스로 관청에 가서 이름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혼을 했다고 이름이 저절로 자기의 결혼 전 이름으로 바뀌진 않는다. 한 지인 중에는 이혼 후 전남편의 성씨를 그대고 가지고 계신 분도 있다. 전 남편의 흔적을 이름에서 지우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그분 말로는 독일에서 살아가면서 독일 성씨를 가지고 있으면 편할 때도 있어 그냥 둔단다.


나는 결혼 후 20년 동안 내 이름 석자를 간직하고 있다. 성씨를 바꾸는 것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인 데다 한국 사람인 내가 독일인의 성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해서 나는 결혼 후 성씨를 바꾸지 않았다. 내 성씨에 불만도 없다. 얼마나 간단한가. 이 씨. 영어로는 Lee. 브루스 리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씨인 데다 간단하고 부르기 쉽고. 병원이나 관청에서도 성함이 어떻게? 물으면 '리'입니다 하면 철자를 묻지 않고 알아서 적는다.


이름 얘기가 나온 김에 내 딸 미나 이름 얘기를 좀 하자면, 내 딸 미나는 어린애가 이름을 세 개나 가지고 있다. 내 딸은 우리 시부모님한테 하나뿐인 첫 손주인 데다 미나 이전에 태어난 한나가 사산되는 바람에 우리 집안에선 둘도 없는 귀한 아기다. 오죽하면 미나 출생 이후 시부모님은 함부르크 석간신문(Hamburg Abendblatt)에 애 태어났다고 광고까지 실을 정도였다.




미나가 태어나자마자 시어머니는 당신 어머니의 살아생전 이름인 엘리자베스를 미나의 두 번째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그래서 미나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러 가려고 집을 나서는 찰나, 시아버지께급하게 전화를 하셨다. 당신 어머니 이름인 테레사도 미나의 세 번째 이름으로 넣어 주고 싶단다. 나에게는 두 번째 이름도 생소한데 이렇게 작은 애가 이름을 세 개나 가지다니 용납이 안됐다. 


그래서 여러 이유를 대며 반대했다. 애가 학교 가서 서류 작성할 때마다 세 가지 이름을 주렁주렁 쓰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 대입시험칠 때 이렇게 긴 이름을 적느라 시간 까먹을 거 아니냐고. 호텔 예약할 때, 비행기표 살 때, 여권 등록할 때도 종이에 이름 적어넣을 칸수가 부족하다고. 그랬더니 공식적인 이름만 세 개일 뿐  일상생활에선 세 개의 이름을 쓸 필요도 없다고 어찌나 설득을 하시던지... 결국에 굴복하고 말았다. 게다가 시어머니 어머니의 이름만 채택한다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 같기도 하고. 지금 미나의 여권에 보면 아래와 같이 긴 이름이 적혀있다.


미나 엘리자베스 테레사 파우쉬. 


딸이 미래에 모르겐슈테른 이라는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해서 혼전 혼후 성씨는 다 가질 요량이라면,


미나 엘리자베스 테레사 파우쉬 모르겐슈테른.


아, 부르다 숨넘어갈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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