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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Apr 16. 2021

카톡 안받습니다

웟쯔앱도 안받아요

회사가 이사를 했다. 직원들 중 몇은 운좋게도 자기 방을 배정받게 되었다. 나도 감옥같기도 하고 고시원같기도 한 조그마한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12 평방미터 정도되는 하꼬방. 그래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처음 받아보는 내 방이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그동안 불쑥불쑥 찾아오거나 10미터 밖에서 들으라고 소리치던  소람들이 이제는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코로나 감염에서 안전할 것 같았고, 회사지만 사적인 공간을 보장받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내 마음은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단절되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과 잡담을 나눴는데 이렇게 작은 방에 갇혀서 일하다 보니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제외하면 사람만날 일이 매우 드물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더 많았을 수도. 하루종일 갇혀서 일하다가 머리뚜껑이 열릴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엉덩이를 들고 수다를 떨러 리셉션으로 나간다. 거기 누군가가 있으면 누군가와 한 15분 정도 수다를 떨고, 약간의 스트레스가 방출됐다 싶으면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 일을 한다.


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방이다. 옆방에서 누가 크게 재채기를 해도 남의 비말을 들이마실 염려가 없는 곳이다. 내가 마음높고 크게 재채기를 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을 공간이다. 자기 방을 가진 이들은 모두 앞에 있는 벽을 보고 일을 한다. 뒤에는 검정색 서류철이 꽉 들어차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방안에는 흰색과 검은색만이 있다. 검은색 컴퓨터, 서류철, 프린터기, 흰색 책상, 벽, 책꽂이, 책장, 쓰레기통. 내 얼굴색은 검은색과 흰색 중간의 어디쯤. 내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생기가 도는 것은 벽에 붙어있는, 미나가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사이에 그린 그림들 뿐이다.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직원들은 점심도 따로 먹는다. 11시 30분 정도가 되면 컴퓨터에 식사배달앱이 뜬다. 먹고 싶은 것을 클릭하여 배달담당직원에게 보내고, 식사가 배달되면 자기 자리에서 먹거나 빈 방에서 먹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둘러앉아서 밥을 먹었을 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회사 안에서의 주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이제 얘기가 아닌 MS Team이다. 우리는 만나서 얘기하기보다 컴퓨터에 설치되어있는 마이크로 소프트 팀을 통하여 문자로 대부분의 소통을 해결한다. 간접소통은 인사과에서 장려하는 일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현금배달이 원활하지않아  매장에 현금이 쌓여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오늘 비디오 컨퍼런스가 있을 얘정이오니 빠짐없이 참석부탁드립니다.'


'14시 30분에 코로나 테스트가 예약되었으니 1조 팀원들은 테스트장까지 정시에 도착하시길 바랍니다. 코로나 테스트를 위하여 직원 한 명당 각 30분의 시간을 할애해 드립니다.'


'저는 내일 홈오피스이오나 이메일이나 MS 팀을 통하여 언제나 컨택할 수 있습니다.'


'생일을 맞이하여 케잌을 주방에 두었으니 직원들께서는 맛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주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리셉션이 비어있을 예정입니다. 제가 휴가거든요. 즐겁게 보내시고 다음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이렇게 하루종일 직원들과 문자로 소통을 한다. 그뿐인가, 거래처와는 이메일로 소통을 하니 하루에 받는 이메일 보내는 이메일도 부지기 수이다. 이렇게 갇혀서 하루를 지내다 보니 입에서는 군내가 나고 손가락만 타자를 치느라 바쁘다. 하루를 마치는 날 타자수를 계산해보자면 아마도 단편소설 한 두 권 분량은 치지 않을까 싶다.


문자는 개인적으로도 주요한 소통수단이 되었다.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 핸드폰에도 친구들의 카톡들이 종종 들어와있다. 그룹톡방이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50통도 넘는 톡이 들어온다. 대부분은 자식들 공부하는 얘기, 과외하는 얘기, 대학입시 준비하고 시험본 얘기, 군대가는 얘기. 웟쯔앱에서는 주로 시댁식구들의 근황들이 들어있다. 코로나 예방주사 맞은 얘기, 주목할만한 신문기사, Arte에서 볼만한 다큐멘터리 얘기,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한 벚꽃들의 사진.


'거긴 지금 꽃이 피었나봐요. 여긴 벌써 지기 시작하는데...!'


'예방주사 안아프셨어요?'


'그 기사 저도 읽었어요.'


며느리로서 정도의 리액션을 취해줄 법도 하지만 나는 늘 묵묵부답이다. 어제 오늘 묵묵부답이었던 것도 아니었던지라 시댁식구들은 대답없는 나에게 그저 그러려니 한다.


단톡방의 톡들은 대부분 읽지도 않고 지워버린다. 한 번은 핸드폰 속에 용량도 꽉 찼고 해서 카톡앱 자체를 지워버린 적이 있었다. 2주동안 핸드폰이 조용하니 내 마음속에도 고요가 찾아왔다. 카톡앱을 다시는 깔지 않을까 싶다가도 친정에서 긴급한 연락이 오면 어쩌나 싶어서 카톡앱을 복구할까 망설이고 있을 무렵,


언니, 무슨 일 있어요?


하면서 아는 동생이 웟쯔앱으로 연락이 왔다. 왜 일주일이 넘게 카톡을 확인도 안하고 답장도 안하냐고, 혹시 코로나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한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연락을 했단다. 우리집 경조사를 늘 챙겨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고마운 친구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선 그 관심 조차도 귀찮아 나는 늘 덤덤하게 대꾸하거나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전에 없이 무뚝뚝한 나의 리액션에 이 친구는 실망감을 표현했다.


내가 문자를 싫어하는 것은 문자가 오면 내가 읽고 답장을 해줘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읽고 답장을 해주는 것은 내가 회사에서 하루종일 하는 일이다. 나는 사적인 시간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주제를 가지고 문자를 읽고 답장을 해주는 것이 일처럼 느껴진다. 성격상 답장을 대충 해주지도 못한다. 나는 댓글을 달때나 톡에 답장을 할때도 늘 퇴고를 한다. 문장이 매끄러운지, 맞춤법이 틀리지 않았는지, 조금 더 세련된 표현은 없는지... 이래서 답장은 내게 일이라는 것이다. 월급도 안나오는 일.


그러니 친구들이여,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 카톡을 받고싶지 않다. 보내도 나는 계속해서 답장이 없을 것이다. 피곤하니까. 서로에 대해 너무 시시콜콜 아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고 궁금한 건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 일단, 나는 문자의 바다에서 벗어나고 싶다.



PS.

그러고 보니 내가 최근들어 회사에서 흥미로운 소통을 한 이는 청소하는 아주머니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내 모노톤의 생활에서 목요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오시는 날에 약간의 활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아주머니는 나이가 예순 정도 되셨고 20년 전엔가 이라크에서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애 셋을 데리고 독일로 도망나오신 전쟁난민이시다. 인생이 스펙터클하신 분. 이 분은 남에게 잘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말도 툭툭 내뱉고 월급이 적다고 늘 불만이시다. 직업에 대한 동기부여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청소도 대충하는 것 같다. 그런 점이 내가 이 아주머니를 좋아하는 점이다. 언제 시간이 되면 이 아주머니에 대해서 한 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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