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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Dec 25. 2021

독일에서 백신 미접종자의 삶

'우리'에 속하지 못하는  만만치 않은 삶

나는 백신 미접종자다.


커밍아웃 하는 기분이다. 주변에서는 아주 가까운 지인들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내가 미접종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기사를 보면 독일의 접종자 비율은 70% 라는데 30%의 미접종자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내 주변엔 대부분이 접종자다. 미접종자라고 말하는 순간 주저리 주저리 변명처럼 둘러대야 할 상황들이 너무 싫어서 나는 백신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누가 묻지 않으면 굳이 내가 나서서 미접종자라고 밝히지 않는다. 그간 말수도 많이 줄었고 자주 통화하던 친구와도 연락을 안 한 지도 좀 됐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조촐하게 우리 셋이서 보냈다. 평소 같았으면 3박 4일 기차표를 끊어 시부모님이 계신 함부르크로 갔을 것이다. 호텔에서 지내면서 크리스마스 이브엔 시댁에서 거위요리로 저녁식사를 하고, 다음날은 정다운 옛 이웃인 마리아네로 가서 을 먹고, 마지막 은 한국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을 텐데... 겨울 들어 코로나 방역대책이 까다로워지면서  미접종자를 받아주는 호텔도 없고 카페도 없고 식당도 없다. 게다가 시부모님은 접종을 하지 않은 우리들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며 종종 미접종의 위험을 알리는 기사를 웟쯔앱 그룹톡으로 보내신다. 한 성질하는 방만구 씨는 기사를 받으면 '노인네 걱정도 팔자네' 하고 흘려버리면 될 것을 전화를 해서 당신이 틀렸네 내가 맞네 하며 대판 싸운다. 이리하여 우리 부부와 시부모님 간에 냉기류가 흐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글루와인 개시!'


12월이 되면 독일인들은 레드와인에 오렌지와 계피 등을 놓고 끓인 글루와인을 마신다. 식당, 카페, 바는 물론 키오스크에서도 판다. 사진 kiekmo.hamburg에서 퍼옴.


얼마 전엔 방만구 씨와 산책을 가다가 키오스크에 잠시 들렀다. 이곳은 신문이나 담배 음료수 등을 파는 구멍가게인데 얼마 전부터 글루와인(데운 레드와인)을 판다길래. 그렇잖아도 비도 오고 으슬으슬 추워서 글루와인 한 잔이 생각나던 , 한 잔 시켜서  야외 파라솔 아래서 마실 양이었다. 나는 주문하면서도 사실 조마조마했다.


'혹시 못 마시게 하면 어쩌지? 쫓겨나면 창피한데. 그래도 바깥인데, 설마 손님도 아무도 없는데 못 마시게 할까...'


 글루와인을 들고 파라솔 아래 서서 마시려고 하는데 주인이 가게 안에서 소리쳤다.


"백신 패스 있어요?"


없다고 했더니 나가라고 했다.


'그럴 수 있지. 아무리 단골이라도 저런 작은 가게에서 불법영업을 했다가 벌금이라도 물게 되는 날이면 한 달 장사 망칠 수도 있고. 그럼, 그럴 수 있어.'


이해는 되지만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글루와인이 든 종이컵을 들고 길을 걷자니 처량한 기분이 들고 주인이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방만구 씨가 옆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울었을 것이다. 아니다, 혼자였다면 용기가 없어 글루와인 정도 안 마시고 말지 애초에 가게엔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거 못 마신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2주 전, 방만구 씨가 갑자기 아파서 종합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코로나 음성 테스트 결과를 가지고. 리셉션에서는 내가 백신 미접종자라는 이유로 동행이 불가하다고 했지만 나는 상태가 안 좋은 환자를 보호자도 없이 혼자 들여보내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사정했다. 그랬더니 방문증을 기록하고 백신 미접종자라는 동그란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서야 동행을 허락했다. 담당 진료과에 도착해서 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간호사가 가슴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는 백신 미접종자냐며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미접종 보호자는 출입이 불가하니 등록만 하고 나가라고 했다. 코로나 음성 테스트 결과도 있고 환자상태가 안 좋아서 내가 옆에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규정상 어쩔 수 없다며 나갈 것을 종용했다.


밖으로 나오니 참 난감했다. 밖은 살얼음이 얼 정도로 추웠고 내가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카페나 식당은 물론이고 도서관과 병원 로비 조차도 미접종자에겐 닫혀있었다. 진료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집으로 돌아가기도 뭣했다. 결국 나는 뜻하지 않게 두 시간이나 산책을 한 뒤 꽁꽁 언 몸으로 방만구 씨를 데리러 가야 했다.


지난주 주말에는 함께 온라인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벙개가 있었다. 내 한복판에 위치한 카페에서. 웟쯔앱 내용을 보아하니  참석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중 등록하는 날 유일하게 실물 얼굴을 본 적이 있는 한 수강생이 내게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나는 백신 미접종자라고 하면 말이 길어질까 봐 다른 약속이 있다고 둘러댔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벙개 후에 사진들이 여러 장 그룹톡으로 올라왔다.


'재미나게들 잘 놀았네.'


그 누구도 내게 상처를 주지 않았지만 나는 상처를 받았다.


오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이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동네 친구인 데다 미나 절친의 엄마 코로나 방역이 시작되기 전에는 자주 만나 밥도 먹던 사이였다. 물론 방역이 까다로워진 이후에는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그 친구는 얼굴 본 지 너무 오래됐다며 한동안 못한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나야 작은 애 축구교실에 데려다줘야 돼서 접종했지. 거긴 실내 체육관이라 미접종자는 못 들어가거든. 미나네는 어떻게 부모가 둘씩이나 미접종자네? 부모 둘 다 미접종자이면 애 데리고  생활하기가 만만찮을 텐데... 우리 남편은 날마다 버스 타고 북서 쇼핑센터까지 가서 코로나 테스트한 후에 출근하잖아. 그 덕에 30분이나 일찍 일어나야 해."(독일에서 미접종자는 출근 시나 대중교통 이용 시 코로나 음성 테스트를 소지해야 한다. 그래서 미접종 직장인은 날마다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남편이 접종을 여적지 안 했어?"


"응. 그 덕에 지난 주말에 자기 여동생 결혼식에도 못 갔잖아."


"어머... 가족 결혼식인데도 미접종자는 안 들여보내줘? 코로나 음성 테스트 있어도?"


"당연히 안되지. 식당도 못 들어가는데 사람 많이 모이는 파티엘 어떻게 들어가...  파티장 앞에 건물 관계자가 지키고 서서 들어오는 사람 백신 패스 일일이 다 검사해."


"어머, 느이 시누이가 오빠 원망했겠다. 동생 결혼식에 못 온다고."


"그랬지. 하나뿐인 오빠인데... 결혼식 앞두고 우리 시부모님이 접종하라고 얼마나 닦달하시는지. 하마터면 부모 자식 간에 의절할 뻔했다니까. 나라도 접종을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나저나 이번 일요일에 미나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밥이나 먹고 가. 식당에서도 못 만나는데 집에서라도 봐야 될 거 아니야."


"고마워 갈게. 근데 뭐 필요한 건 없어?"


없다고는 했지만 나는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금요일이자 크리스마스 이브, 가게들이 오후 2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초대를 받았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으니 선물을 사야 한다. 우리 동네 선물의 집에서 선물을 사면 되겠지만 거긴 미접종자 입장 불가이다. 천상 북서 쇼핑센터엘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면야 10분 만에 도착하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음성 테스트가 있어야 하고 테스트를 받으려면 센터에 예약을 해야 한다. 테스트를 받고 결과를 이메일로 받기까지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 집에서 4km 떨어진 쇼핑센터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코로나 방역대책 이후로 나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쇼핑센터엔 많은 가게들이 있지만 미접종자는 패션잡화 매장을 비롯한 많은 상점에는 출입이 불가하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슈퍼, 서점, 약국, 야채가게, 빵집 정도 되겠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서점 앞에는 성탄절 대목을 맞아 '미접종자 테스트 없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고 안내문을 붙여놨다. 거기서 뭘 살까 오랫동안 돌아다니다가 이태리산 향비누 6종 세트를 20유로에 구입했다. 뭔가를 무사히 구입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서점에서 비누를 산 것이 좀 우습기는 하다만.



그런데, 오후 6시경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해서 어떻게 해. 오랜만에 얼굴 좀 보려고 했는데 취소해야 될 것 같아. 시누이 결혼식에 왔던 하객 중에 무증상 감염자가 나와서 말이지. 나도 그 소식 듣고 깜짝 놀라서 애들이랑 검사해봤더니 일단 음성이긴 한데... 그래도 모르니 만나는 건 좀 미뤄야 될 것 같아. 그래도 되지?"


"당연히 되지. 그럼 나중에 다시 통화해."




나는 독일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외국인 신분으로 외국 땅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간 살아오면서 외국인으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았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 독일 사회에서 외국인이라는  때문에 좋은 기회와 혜택들이 주어졌다. 그래서 늘 독일 정부에 감사하며 살아온 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독일에서 미접종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여러모로 힘들다. 비교하자면 외국인으로서 사는 것보다 미접종자로서 사는 것이 백 배는 힘들다. 시시각각 미접종자들을 옥죄어 오는 것 같은 방역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요즘 들어 나는 이 사회에서 '우리'라는 테두리에 들지 못하는 사람의 삶이 이렇게 외롭구나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는다. 가게 앞에 붙여놓은 '접종자만 출입가능!'이라는 문구만 봐도  누군가에게 거절당한 기분이 들어 주눅이 든다.


살아오면서 이런 기분이 든 건 한국에서 건 독일에서 건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기분,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런 기분은 쉽게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백신접종을 완료한 자와 완치자 입장가능, 음성 테스트 소지자는 입장불가능 하다는  안내문. adac.de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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