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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 Jan 08. 2022

FYG - Follow Your Gut(직감 따르기)

직감을 따라 후회를 덜 하는 삶을 사는 것

Episode #2


제주에 내려와 일상을 보내기 시작한 지 벌써 7개월 차다. 


생각해보면, 지금만큼 스스로를 돌아볼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주변의 그 누구보다도 다채로운 변화 속에서 살아왔고, 어떻게 보면 최후의 드라마틱한 씬(?)을 끝내고 이제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느낌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 


왜일까 생각해보면 처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이 나의 구릿빛 피부다.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살았던, 혹은 해외에서 태어난 교포들이 어두운 톤의 피부색을 가진 경우가 많아서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렇게 보면 너무 애매한 톤의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다. 교포들 사이에서는 애매하고,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혼자 외국물 다 먹어 보이는 아주 애매한 노란 베이지톤이다. 


하지만 문제는 오해를 살 만한 피부톤이 아니라, 사람들의 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요, 피부색 때문에요?"라고 대답하면 싸우자는 것 같지 않을까. 


"네, 살다 왔어요."라고 대답한다면, "어디서요?"가 뒤 따르기 마련이고,


"아.. 미국이랑, 스웨덴이랑, 이탈리아에서요."라고 대답하면 "네?! 전부 다요? 거기서 공부하신 거예요?" 라며 눈동자 위 흰 면적을 최대로 드러내 보인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어 오기 때문이다. 


"아니요, 태어난 건 한국에서 태어났고 대학도 한국에서 나왔는데-"로 시작하는 긴 썰을 풀기에는 너무 긴 대화가 되어버려 서로의 귀중한 시간을 갉아먹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화의 주제가 내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도 하다. 


나는 외국에서 살다 온 걸까? '산다'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일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 몇 년을 미국에서 살았고 다시 돌아와 대학까지 서울에서 졸업했다. 정말 평범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신입사원 공채로 대한민국 회사에서 일하다가 외국물이 먹고 싶어 유학을 준비했지만, 결국은 현실과 타협하여 서울에 있는 국제대학원을 다녔다. 국제대학원에서 나름대로 잘해서인지 스웨덴에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고, 졸업하고 나니 너무 자연스럽게 해외 취업의 기회가 생겨 이탈리아로 건너갔을 뿐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고작 서너 문장으로 요약될 만한 막힘없는 이야기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고 경이로운 독특한 삶의 발자국일 수 있다. 


"어쩌다 가게 되신 거예요?"

"무섭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확신이 들었어요?"


내가 살아온 삶을 신기해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현재에서 잠시 벗어나 과거로의 회상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정말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으로 GPS가 고장 난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간헐적으로 떠돌며 살아왔을까? 무엇이 나의 자극제였고, 무엇이 나의 동기이고 확신이었을까? 


요즘 종종 그리워지는 밀라노 내 방 테라스. 보안에 취약하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기에는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확언을 못하겠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강단 있고 계획과 결정을 잘하는 캐릭터였다. 선택지 여러 개가 눈앞에 놓여 있을 때, 고민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짧고 농도 있게 한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한 가지만 바라볼 뿐, 선택하지 못한 나머지 옵션들을 다시 돌아보거나 미련을 가지지 않는 성향이다. 내가 선택한 대로 밀고 나가고, 그것을 선택한 나 스스로를 충분히 믿는다. 


한국말로 "너의 직감을 믿어"라는 문장으로는 내 가치관의 뉘앙스가 전혀 담기지 않는다. 

"Follow your gut." 이 정도면 짧고 굵게 내 삶의 에센스를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Gut feeling은 국문으로 직감, 제육감(第六感)으로 번역되지만 영문으로 그 의미를 해석하자면, 나의 머리가 아닌 오장육부가 보내오는 일종의 시그널 같은 것이다. 


"A feeling that you are certain is right, although you can give no good reason why."

("무언가가 맞다는 느낌, 비록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When you feel anxious, fearful, or certain that something's wrong, you might experience stomach twinges, pain, or nausea."

("왠지 불안하거나, 무섭거나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면 뱃속이 꼬이는 느낌 또는 고통, 메슥거림을 느끼게 된다.") 


제주도의 퇴근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자수를 볼 수 있다.


나는 나의 gut의 존재를 어렸을 적부터 강하게 느껴 왔다. 내가 자신이 없는 것을 함에 있어서, 또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 상황에서는 항상 엄마한테 배가 아프다고 칭얼대곤 했다. 어딘가로 향하는 길에서 대부분 그 느낌을 받는데, 그럴 때면 위험 요소를 분석해서 대략적인 대책을 머릿속에 마련해놓거나 아예 일정이나 계획 자체를 변경하기도 한다. 


반대로 이상하게 뱃속이 편안한 상태일 때도 있다. 그날은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신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귀인을 만나기도 한다. '느낌적 느낌'으로 확신하게 되는 상황, 머리로 하는 분석과 이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사건. 마치 비어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는 것과 같이 쾌감이 느껴지는 변화. 나는 그 느낌을 믿고, 따르고,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지금 기억으로도 그냥, 왠지 해야 될 것 같고 또 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 8만 원만 달라고 했다. 집 옆 건물에 있는 미술학원의 취미반 수강료였다. (8만 원이라니.. 물가의 변화가 극심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그림이 그리고 싶냐고 물으셨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빈 종이에 수채화와 콘테로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들이 기다려졌고, 또 꽤나 잘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예고 입시를 준비하게 됐고, 예고와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지금은 디자인을 하지는 않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에피소드 3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여행을 할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나는 머리로 생각하고 미리 세운 계획을 따르기보다는(INFJ라서 인지는 몰라도 플랜비를 위한 리스트는 항상 준비되어 있다) 기분이 좋아지고 속이 편해지는 쪽을 바라보고, 걷고, 감상한다. 길을 잃어도 좋다. 어차피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고, 위험하다면 내 육감이 이야기해줄 테니까.


나의 Gut feeling은 나에게 (현재까지는) 좋은 것들만을 가져다줬다. 그런 일들이 누적되다 보니 조금은 과하게 그 느낌을 신뢰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이런 느낌을 좀 찾아보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느끼지 않던 사람은 결코 느끼는 법을 모른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많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또, 나의 Gut feeling과 나의 긍정적인 성격이 결합되어 여태껏 불만 없이 잘 살아온 걸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육감을 따르는 건 아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또 기가 막히게 이성적이고, 분석적이고, 계획적이며 냉철하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만큼은 논리 없이 섣불리 결론을 내지 않고, 신뢰할 만한 풍부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검토를 한 후에 움직인다. 그냥, 직장 생활을 10년째 하면서 가장 효율적이고 리스크가 적은 업무 방식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육감만 믿고 일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아마 진즉 책상이 사라졌겠지.  


어쨌든 내 직감을 믿어 선택한 진로, 내 직감을 믿고 사귀게 된 사람들, 내 직감을 믿고 과감히 내려놓은 것들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가 정말 거의 없다. 내 직감이 5년 전에 비트코인을 구매하라고 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찌 보면 내 오장육부가 그런 불안한 롤러코스터에 타는 것을 말렸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사이 쌓인 나의 정신적 재산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제주에 내려오게 된 것도, 제주에서 첫 면접을 본 회사에 다니기로 한 것도, 이렇게 제주의 바닷가가 보이는 한적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며 나 자신과 과거를 곱씹을 시간이 주어진 것도 전부 나의 Gut feeling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머릿속 생각을 잠시 비우고 몸이 이끄는 대로 가본다는 것. 그 뒤에 생길 일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매력. 예측할 수 없기에 아름답고 설레고 쫄깃하지 않은가. 


때로는 초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 같이 살고 싶다.


2021년에는 나의 외부적인 환경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한 해였다면, 2022년은 진정한 내적 성찰이 들어가야 하는 시기이다. 이번에도 나는 어김없이 나의 Gut에 의존해볼 것이다. 



Next: Episod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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