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혼자 두지 마세요 엄마! 아직은 모든 게 무서워요.
아이가 80일 정도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아이를 품에 안고 왔다갔다 하면서 재우다 문득 먼 과거 일이 생각났다.
몇살이었을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친할머니 댁에 명절을 새러 갔을 때였는데, 잠이 많던 나는 어른들이 저녁식사후 수다타임을 갖는 동안 어딘가에 누워 잠들었던 것 같다. 어딜가나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나라서 여느때처럼 아빠가 들쳐매고 데리고 갔을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자면서도 문득 써늘-한 생각이 들어 눈을 번쩍 떠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댁 방바닥에서 할머니와 잠을 자고 있더라. 엄마 아빠는 다른 가족들과 길 건너편 다른 숙소에 주무시러 간 것이었다. 엄마 아빠랑도 같은 방에서 자주 자왔던 터라 익숙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방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어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 때 느낀 배신감과 서러움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분명 숨 죽이고 울고 있다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잠에서 깨셔서는 왜 우냐고 물어보셨다. 꿈꾸다 운 것처럼 바로 눈을 감고 다시 자는 척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도 알고 계셨을 것 같다.
분명 나는 숨죽이고 슬쩍 잠든 아들을 보고 나온다 생각했는데 잠시 후 깨어나 울며 나를 찾기 시작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느꼈던 그 촉, 분명 우리 아이가 같은 촉으로 내 부재를 느끼는 것 같다. 남편은 ‘엄마 냄새가 났나보다‘고 하는데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릴 적의 나와 비슷한 배신감을 느꼈던 걸까? 아이를 가슴 한가득 안아주며 엄마 여기 있다고, 이 세상의 모든 무서운 것들로부터 넌 안전하다고 이야기해준다.
"엄마 여기 있어! 걱정하지마 아가. 엄마가 언제 어디서든 항상 3초 안에 달려올께."
눈을 감은 채 울고 있는 아가는 엄마 냄새를 맡았는지 서서히 울음을 그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그마한 이 생명체가 눈부신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텐데, 하나 믿고 있는 나마저 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누구보다도 든든하게 아이 옆을 지켜주고 싶다. 좀비가 나타난대도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할머니께 죄송하다. 세상에서 본인 아들인 아빠 다음으로 나를 가장 예뻐해주셨던 분인데, 울지 말고 할머니 품에 안겨 한번 더 꼬옥 안아드릴 걸 그랬다. 할머니가 곱게 따주시던 머리와 짙게 물들여주시던 봉숭아물이 그리워진다.
엄마가 되고나니 감성이 그 때 그 봉숭아물 만큼이나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