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100% 남편주도 캠핑여행기입니다.
2023년 4월 7일.
15일간의 호주 캠핑여행이 시작되었다.
여라 차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본인의 로망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짐을 싸고 있었다. 15일간의 캠핑 자체만으로도 어려운데, 캠핑카도 아니고 카라반을 끌고 떠나는 캠핑이라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짐을 싸면서도, 카라반을 픽업하러 가면서도, 출발을 하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을 뿐.
처음 마주한 카라반을 보고 든 생각은 '이거 뭐냐. 우리 정말 괜찮을까'였다.
카라반이라는 것이 차량 CC에 따라서 끌 수 있는 카라반 크기가 정해져 있었다. 우리 차량은 2,000CC였기 때문에 끌 수 있는 카라반 크기가 제한적이었고, 고민 끝에 빈티지 카라반을 선택했다. 어느 정도 작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실제 살펴본 카라반의 내부는 훨씬 협소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남편은 너무 좋아했다. 들어가서 누워보고 만져보고 심지어 뛰어보기까지.
'남편아, 딸들아, 그렇게 좋으냐? 그럼 나도 좋다.'
신나기만 한 남편은 카라반 소유주인 호주부부에게 찰싹 달라붙어 카라반 토잉(차량에 카라반을 매다는 것) 하는 방법을 배우기에 온 집중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났다. 열정적인 저 남자, 나만 믿으라는 저 남자 말을 의지할 수밖에.
소유주 앞에서 차량과 카라반을 연결하고 해제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연습하고 잘했는지를 확인받고, 드디어 떠날 채비를 마쳤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천천히 카라반을 끌고 출발했다.
우리의 캠핑카 여행 루트는 시드니에서 출발해서 골드코스트까지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드니 채스우드에서 골드코스트 빅 5 캠핑장까지의 총거리는 838km, 총 소요시간 8시간 50분에 달하는 대장정이었다. 차로 한 번에 가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중간중간 캠핑장에 머무르면서 이틀에 걸쳐 올라가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약 4시간 거리의 TIMBER TOWN 캠핑장.
이곳은 그냥 거쳐가는 느낌으로 예약한 곳이었다. 큰 기대 없이 도착했는데, 숲 속 초입에 위치한 아담한 캠핑장 주변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이 있었다. 참 고요하고 평온했다. 길 건너엔 마트도 있었고 작은 카페도 있었다. 호주 시골은 시골 같은 풍경에 시골 같지 않은 편의 시설과 깨끗함이 있어 볼 때마다 놀랍고 매력 가득하다.
운전한 사람보다 조수석에 앉아 뒤에 메단 카라반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달리는 내내 노심초사 한 나의 얼굴이 훨씬 초췌했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온몸이 쑤셨고, 멘털이 탈탈탈 탈곡기처럼 털려있었다. 처음 해보는 카라반 운전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그는 그저 계속 흥분상태인 듯 보였다. 피곤한 기색도 없이 카라반을 주차하고 토잉을 해제하고 필요한 짐을 내리고 천막을 설치하고 의자를 세팅하고 이 모든 것을 혼자 다 해내고 있었다. 두 딸들은 참새처럼 아빠 뒤를 쫓아다니며 뭐 할 꺼없나, 재미있는 거 없나 기웃거렸고, 나만 여전히 이 캠핑카 여행이 맘에 들지 않았다.
캠핑장엔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딱히 애들이 놀거리도 없었고, 진짜 할 게 아무것도 없는 캠핑장이었다.
그냥 자연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엄청 심심해할 줄 알았는데, 웬걸 둘이 알아서 잘 놀았다.
앵무새 보고 말도 걸어보고 돌멩이랑 나뭇가지 가져다가 뭐 만들어서 놀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그제야 '어, 나, 좋은가? 편안한가?'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얼마만인가.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무해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이 뿜어내는 무해함.
해 질 녘. 그는 조용히 화로와 장작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불 피우는 게 가능한 캠핑장.
그에겐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겐 마시멜로 꼬치를 하나씩 쥐어줬고, 난 자연스럽게 장바구니를 뒤져 마시멜로를 챙겨 나왔다.
남편이 장작과 숯으로 불을 열심피 붙이는 동안 양갈비와 각종 채소들, 고기 굽는데 필요한 각종 장비를 세팅했다. 캠핑은 싫지만 캠핑 고기는 너무 맛있으니까.
지글지글 알맞게 익은 양갈비를 한 입 베어문 순간.
'아~~~~~~~~~ 맛있다' 탄식하고 말았다.
자존심 상하게도 그가 구운 고기는 지금껏 먹어본 양갈비 중 단연 최고였고, 나도 모르게 쌍따봉을 날리고 있었다. 고기도 마시멜로도 밤하늘의 별도 모든 게 완벽했던 저녁시간.
'생각보다 괜찮네? 캠핑카 여행 해 볼만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