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카롱 Nov 22. 2024

비 오는 날의 캠핑 좋아하세요?

빗소리 음악처럼

캠핑 2일 차. 간 밤에 잠을 제대로 잤을 리가 없다. 몸을 간신히 일으켜 눈곱만 떼고 나와 짐을 카라반 안으로 옮기기에 바빴다. 3시간 거리의 캠핑장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랑은 또다시 카라반과 차량을 연결하는 작업에 몰두했고, 혹시 몰라 옆 자리에 캠핑하고 있던 아저씨한테 잘 된 것인지 최종 확인을 받았다. 아직은 익숙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아야 안심이 됐던 것 같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7시였다. 아침은 가는 길에 주유하면서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마침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유소가 나왔고, 천천히 그곳을 향해 들어섰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차는 디젤 차량이기 때문에 디젤 주유기계가 있는 곳으로 진입했어야 했는데, 휘발유 주유기계 쪽으로 들어선 것이다. 평소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지금 뒤에 카라반을 달고 있지 않은가. 뒤로 후진해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뒤에 달린 카라반을 조정하려면 일반 차량과 달리 핸들을 반대로 조정해야 했다. 카라반 운전에 좀처럼 당황하지 않던 신랑도 처음으로 긴장하는 듯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조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조수석에서 앉아있는 난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통해 뒤에 무슨 일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다 결국 안 되겠다는 듯,     


“자기야, 뒤가 잘 안 보여서 그러는데  밖에 나가서 좀 봐줘야겠는데?”

“알았어.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는데?”

“뒤에 가서 얼마큼 가면 되는지 보고 나한테 손으로 알려줘”

“그래.”  

   

“우리 다음부터는 주유기계 잘 보고 들어가자. 꼭.”     




3시간 30분을 열심히 달려 도착한 Minnie Water캠핑장.

얼마나 산속에 있는지 큰 도로에서 좁은 길을 들어서도 한참을 달렸다. 거기다 비포장 도로여서 꿀렁꿀렁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캠핑장은 진짜 정글에 있는 듯했다. 게다가 아시아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다들 맨발로 다녔다. 마치 다른 행성에 들어온 외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색함은 잠시 접어두고 빠르게 캠핑 사이트를 찾아 세팅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카라반 내부 정리만 하고 캠핑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런데 글세 이곳 캠핑장안에는 캠핑객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카라반 여러 개를 연결해 개조해서 집으로 만들어 진짜 사는 주민도 함께 있던 것이었다. 화려한 꽃장식으로 멋진 정원도 만들어 놓고 서말이다.

곳곳에 있는 카라반 집들을 한참을 흥미롭게 구경하며 캠핑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캠핑카로 돌아와 가제보를 펴고 식탁과 의자를 세팅하고 있는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일단, 신랑만 남겨두고 나와 아이들은 카라반으로 피신했다. 할 것도 딱히 없고 냅다 침대로 누워버렸다. 아이들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자그마한 창 밖으로 비 내리는 거 보며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함께 살을 맞대고 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아이들은 몸이 근질거려 금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오고 그칠 비도 아닌 것 같아 밖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포기했다.

일단, 아이들은 패드에 미리 받아온 영화를 봤고, 우린 밖에서 저녁 먹을 준비를 하기로 했다.

카라반 주인이 천막을 챙겨주지 않았다면 좁디좁은 카라반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할 뻔했다.

챙겨준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천막은 우리에게 공간을 선물해주었다. 2평 남짓한 카라반 안을 벗어나 바깥공간을 누릴 수 있게 말이다.

우리는 천막 밑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준비를 했다. 이곳 캠핑장도 불을 피울 수 있는 곳이어서 비가 오지만 신랑은 챙겨 온 나무와 숯으로 불을 피웠다. 나무 타는 냄새와 숯 냄새가 너무 좋다고 한다. 캠핑은 불을 피우는 맛에 한다던데, 진짜 캠핑고수로 거듭나려나보다 생각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더욱 거세게 내렸다. 저녁이라도 해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실 그땐 다 포기하고 카라반 안으로 들어가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굶길 수 없었기에 오늘 먹은 거라곤 햄버거 하나가 전부였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 했다. 물론, 불도 신랑이 피웠고 고기도 신랑이 굽고 있었지만, 그 외 햇반도 데우러 공동 키친에 다녀와야 하고 김치, 야채, 그릇, 수저 등등 좁디좁은 카라반주방과 밖에 세팅한 식탁 사이를 오가며 준비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밥 한번 먹을 때마다 나의 허리와 무릎은 닳았고, 한숨 쉬기를 수십 번 해댔다.  

그래도 그날 저녁 고기만찬과 와인은 맛있었고, 빗소리는 아름다웠으며, 흙냄새는 코를 시큰하게 했다. 아이들과 함께 비 내리는 자연 속에 앉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있었던 그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나는 원래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빗물 튀는 게 싫고 찝찝하고 비 오는 날 그 특유의 향기도 싫었다.      

 이 캠핑이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 아니었을까.       

비가 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비가 온 덕분에 운치 있고 낭만 있었던 2일 차 킴핑날 밤이 그렇게 저물었다.


이전 01화 카라반 업고 튀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