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인 요양병원.
그렇게 자주 말하고 들었으면서 나는 왜 이곳에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나는 젊은 사람들보다도 요양병원에 대해 몰랐을지 모른다. 그저 이름처럼 잠시 머물러 요양하는 곳이라 여겼는데, 요즘에는 다른 용도로 더 찾는 거 같았다. 죽기 전, 그러니까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때,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어쩌지를 못할 때 가는 곳.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며칠간 나는 요양병원의 생리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썼다. 내가 있는 병실에는 간병사가 두 명이었다. 간병사는 서로 일을 나눠 맡은 듯 한 명이 침대 정리를 하면 다른 한 명은 바닥 청소와 쓰레기를 버리고, 한 명이 식사를 가지러 가면 다른 한 명은 침대에 달린 식탁을 올려 식사할 준비를 했다. 같이 오래 일을 했는지 언니 동생으로 칭하며 손발이 잘 맞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깐씩 두 명이 모두 사라지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이 식사를 하거나 쉬거나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모두 사라져 병실에 없다고 해도 크게 불편할 건 없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 거야. 늘 비슷한 마음이었으니 또 참으면 되는 거였고. 정 급하면 침대 위에 있는 벨을 누르면 되었다. 나는 그들이 사라져 고요한 시간 동안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는 참 예쁜 얼굴이었겠군.’
어떤 할머니는 늙었지만 여전히 고운 얼굴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이런저런 궁금증을 품었다. 옆 침대에 있는 할머니는 어떤 연유로 여기 왔을까? 앞 침대 할머니는 남편은 있을까? 자식은 몇 명이나 있을까? 나는 그들 하나하나에게 수많은 궁금증을 품었는데,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았듯 그들 역시 내가 품는 질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묻지도 않았다.
혼자 질문하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는데, 사실 그들과 눈 맞춤을 한 것도 몇 번 되지 않았다. 병실에 있는 노인들은 거의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그나마 눈을 뜨고 가끔 걸려오는 자식들 전화에 통화라도 하는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어떤 날은 나도 전화를 받을 기력이 없어서 그저 짧게 끊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은 여전했지만 내 몸이 그걸 받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운동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다. 아들도 딸도 며느리도 나를 이곳에 데려오며 몇 번이고 당부했다.
“엄마, 운동 열심히 하세요. 그래서 꼭 건강하게 집에 돌아오셔야 해요.”
자식들은 내게 운동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거라고 자꾸자꾸 설명했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입원해서 하루도 빼지 않고 운동을 했다. 눈만 감고 누워있는 그 노인네들에 비하면 운동하러 가는 나는 아주 멀쩡한 것처럼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난 당신들과는 달라. 비록 지금은 혼자 걷지 못하지만 난 걸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야. 난 당신들처럼, 송장처럼 눈 감고 있지 않아.’
절대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생각이었지만 그런 생각으로 나는 꿋꿋하게 일어나 운동을 하러 갔다.
점심을 먹고 좀 쉬고 나면 운동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나도 다른 사람들이 하듯 송장처럼 누워있고 싶었다. 몸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면회를 온다는 자식들 만날 생각에 억지로 일어나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어르신 너무 힘드니 오늘은 쉬시지요.”
간병사가 여러 번 말렸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지 않은 얼굴이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건 간병사에게도 내게도 들려주는 나의 다짐이었다. 운동 치료사의 도움으로 걷기 운동을 하고 나는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멀리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사이렌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게 첫 번째 연명 셔틀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명료하지 않은 정신으로 잠깐씩 깨어났고, 내가 깨어난 곳은 한없이 번잡스럽고, 또 한없이 고요했다. 그곳이 중환자실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죽기 직전의 환자가 새로 들어왔고, 죽어 마땅할 환자가 죽어 나갔다. 요양병원에서 응급실로 실려 온 나는 사람의 몸에서 나올 거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가래를 빼냈다고 한다. 그 가래 때문에 내 폐는 쭈그러들었고 그래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다고 했다. 숨을 쉴 수 없으니 중환자실 행이 결정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나는 내 몸이 어떤지 어디가 어떻게 고장 난 건지 그리고 나을 방법은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설명해 주는 이가 없었고, 중환자실에 있는 나는 입에 호흡기를 넣어서 어떤 질문도 던질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