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은 산다

5. 몸부림치는 새벽

by 스토

아빠가 계신 요양 병원을 나설 때면 언니는 당부하듯 말했다.

'내가 가까이 있으니 너희는 일상을 살아.'

나는 언니의 말을 명령처럼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야 나도 좀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가끔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아빠는 혼자서 저렇게 누워있는데

나는 지금 먹고, 웃고, 일하고

내가 아빠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너무 야박하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어처구니없고.

이러려고 살고 있는 게 아닌데

이러려고 병원에 모신 게 아닌데

적지 않는 나이를 먹었지만 이럴 때 나는 참 바보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다.

다음을 예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하는 철부지 같다.

못난 꼴로 눈물만 질질 흘리고 있다.




사는 게 참 잔인하다.

어떻게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게 말이 되는 걸까?

근데 매번 우리는 그러고 있는 셈이다.

잔인한 삶을 살고 있다.

매일이 다르다

하루마다, 시간마다 아빠는 성큼성큼이다.

가지 말라고도, 잘 가라고도 할 수가 없다.

뭐가 뭔지 모른 체

여전히, 지금도

'아직'인지 '이미'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이러고 있다.

낙엽을 보며 아빠의 발걸음을 느끼고 있다.

슬금슬금이다가 성큼성큼이다.

어제 보았던 아빠의 모습

며칠 전에 보았던 아빠의 모습

찬찬히 기억하며

며칠 새 저만치 달아난 아빠를 느낀다.

어쩌면 이제 더 빠른 속도로 가실지 모른다.

잡아야 하나, 놓아야 하나

잡히지도 놓치지도 않겠지.

사무친다는 게 이런 걸까?

그리워서 어쩌나 하는 생각

그 생각에 이르자 난 다시 무너졌다.

내가 오늘 뭘 한 걸까? 뭔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매일매일 아빠를 찾아가 기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아빠를 위한 나의 마지막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상을 펴고 기도를 했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가 기도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상에 누운 아빠 손을 잡고 기도했다.

아빠 귀에 기도를 들려주었다.

오늘도 그래야지 하고 있는데

난 이게 나의 이기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도가 정말 아빠를 위한 걸까

내 맘의 위로는 아닐까?

그렇다, 난 내가 무척 혐오스럽다.

가증스럽다.




어둔 밤, 혼자인 새벽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시간을 버텼더라?'

'어떤 맘으로 이 슬픔을 눌렀더라?'

그건 살고자 함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산 사람은 산다’고 말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우린 서로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다.

그게 자연의 섭리이며, 누구나 그리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참 무섭도록 미안하다.

아빠, 정말 미안해요. 죄송해요.

부디 잘.... 부디...

기도조차 가증스러운 나는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부디’라고 만 자꾸자꾸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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