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례식 이후
아빠가 돌아가셨다.
‘돌아가다.’
먼 길을 돌고 돌아가는 것일 수 있고.
원래의 모습으로,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말 그대로 그런 것이다.
긴 삶을 이리저리 돌고 돌아 살다가
원래대로 가신 것이다.
그러니 아빠의 행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언제인지, 어느 자리인지 모르나
아빠처럼 나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돌아가기 위해 지금 이 길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천천히, 잘 걸어 돌아가 보자.
아빠의 장례식을 정신없이 치렀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아빠가 계셔서, 우리가 나서서 치르는 장례식은 처음이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동생은 아빠를 태운 엠블런스에 오르고, 언니는 엄마를 부축했다. 저녁이 되어 장례식에 모두 모였고, 조금씩 사람들이 찾아와 떠난 아빠와 인사를 하고,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이모들은 엄마와 함께 빈소 안쪽에 있는 침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든든하게 자란 손주들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아 우리에게 안내해 주었다. 아빠는 떠났지만 그 빈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채워주어 장례식을 잘 마쳤다. 장례식을 막 마치고 나서는 인생의 큰일을 마무리한 것 같은 기분도 있었다. 아빠를 잘 모셨다는 뿌듯함 같은 것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런 기분만 남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마음은 언제나 다양한 속살을 가지고 있다.
장례식 이후, 매일매일이 울렁임의 연속이었다.
불안정한 감정은 하루에도 여러 번 눈물을 쏟게 하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나는 혼자서 계속 아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할 말을 하려니 서럽고, 슬펐다.
그래도 하루하루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건 느끼고 있었다.
겨우 며칠이지만 아마도 이런 식으로 나는 아빠가 없는 세상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려고 노력했다.
삶의 유일한 진리는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마음은 너무 아프고 힘이 들었다.
남아 있는 삶은 이런 이별로 가득 차겠구나 생각하니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남은 사람의 슬픔을 너무 잘 알아서
함부로, 제멋대로 떠나겠다는 마음을 품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들을 너무 아프게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이별이 참 싫었다.
어린것이 뭣을 알아서 그랬나 싶을 정도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따라 죽어야지 하고,
이별 없이 첫사랑이랑 결혼해야지 하고.
그런데 이제 내겐 앞으로 맞아야 할 이별이 너무 많이 남았고,
그 시간은 재촉하듯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이별의 횟수는 헤아리기 무섭게 많을 것이다.
난 이제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이에게 다시 곧
그곳이 어딘지 잘은 모르나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할 것이다.
태어나 죽는 것이 삶의 이치인 것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그렇다.
아빠는 분명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계실 거다.
나는 그걸 굳건히 믿고
내가 아빠의 영정에 목놓아 울며 말했듯
‘아빠, 우리 다시 만나요. 꼭 다시 만나요.’
아빠를 만날 것이다.
<눈물>
아무도 모르게
울먹이며 걸었어요.
울음이 넘치려 하면
일부러 기침을 하며
아무도 모르게 울었지요.
왜 그렇게 울어?
뭐가 그리 슬퍼서
참지 못하는 울음을 울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니?
아무도 모르게
울려고 했는데
아무도 모르면
슬픔도 드러나지 못해
사라질 줄 알았는데
눈물이 모두 망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