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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pr 03. 2024

먹을 수 있다면 살 수 있다

22. 시어머니의 허공을 향한 눈빛

서둘러 시댁으로 갔다. 시어머니가 식사를 못 하신다는데 내 눈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입에 음식을 넣고 일삼아 씹었다. 삼키려면 물을 달래서 도움을 받았다. 그래도 씹고, 삼키기는 했다. 수저질이며 젓가락질이 쉽지 않으니 먹는 게 힘들었고, 그러니 많이 먹지 못했다. 자연히 먹는 양이 줄고, 위가 줄어 더 먹는 것이 힘들었다. 노화에, 우울에 많은 것이 겹친 상태 같았다.


그래도, 결론은 아직은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을 수 있으면 사람은 살 수 있다.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크지만 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시댁에 들어서자 시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있으면 그저 버티고만 있는 것이니 병원에 가는 게 낫겠다."

나는 찬찬히 시아버지의 생각을 물었다. 그동안 나는 주로 어머니와 소통하며 살았다. 시아버지가 집안의 가장이었지만 모든 일을 시어머니가 처리하고, 해결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시아버지가 남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으면 했다. 아픈 아내를 둔 남편으로서, 자식들의 아버지로서 생각을 하고, 행동하기를 바랐다. 지금에 와서 거창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함께 의논하여 방법을 찾도록 하기를 바랐다. 아내의 문제에 일차적으로 고민에 나설 사람은 남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또래이기도 하고, 긴 시간을 함께 헤쳐왔으니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가장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아버지에게 어떤 것이 가장 불편한지, 어떻게 도왔으면 좋겠는지 여쭸다. 노인들은 행동만큼 판단도 느려지고 있었다. 생각하고 기억하는 일이 느려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함께 병원에 가서 의사의 설명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곤 하셨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복잡한 일을 간단한 일로 만들어줘야 했다.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준 약을 모아 아침, 점심, 저녁에 먹을 약으로 구분해 주고, 매달 내야 하는 관리비를 자동이체로 간편하게 바꿔주고, 은행일도 대신 가서 처리해 주는 등의 일 말이다. 그런데 이제 그 일에서 그칠 것이 아니었다.

시아버지는 느린 속도로 그간의 힘든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았다. 시아버지의 말은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었다. 당신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이대로 있어서는 어머니 몸이 나아질 리 없다는 것이다.   


평소 어머니는 병원을 싫어하셨다. 골절로 잠시 입원했을 때도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고 하셨었다. 그러니 입원 문제는 시어머니의 의사가 가장 중요할 것이었다. 나는 시아버지가 어머니와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두 분은 부부로 긴 시간을 보내며, 가장 편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다. 그러니 시어머니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고, 만약 설득해야 한다면 시아버지가 하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그동안 주말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운동시켜 드렸다. 어머니의 거동이 더 불편해지자 남편도 혼자서 어머니를 모시고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우선 든든하게 식사를 드시게 하고, 약도 먹고 나면 조금 쉬었다가 가벼운 겉옷을 챙겨 입었다. 남편이 어머니를 부축해서 계단을 내려가면 나는 잡고 걷는 데 도움이 되는 워커를 챙겨서 뒤따랐다. 대문을 나서면 그때부터는 워커를 잡고 조금씩 걸었다. 혹여라도 주저앉을까 봐 한 사람은 늘 어머니 옆을 지켰다.

봄이 시작되는 즈음이라 해가 좋았고, 늘 집안에만 있는 어머니는 그렇게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몸은 너무 힘들었겠지만 아들이 찾아와 손잡고 도와주니 든든했을 것이다. 그러고 있으면 시아버지도 한 번씩 내려와서 주변을 서성이곤 했다. 요양보호사가 매일 와서 두 분을 돌보고 있었지만 자식들이 와서야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애쓰는 자식들이 한없이 안타까우면서도 이대로 있었으면 하는 맘이 느껴지곤 했다.


아픈 노인을 돕는 것은 남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순간순간 다른 맘이 들곤 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힘들게 움직이는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아빠 생각에 괴로웠다. 미안하고, 그리웠다. 그래서 어떤 날은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시아버지를 ‘아빠, 아빠’하며 불러대는 남편의 입을 틀어막아버리고 싶었다. 그 소리에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다. 때때로 고통스럽고, 잔인한 법이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자식들의 노력에 부응하려 걸음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매주 가는 병원의 재활운동센터로 가서 운동을 했고,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집 앞 골목을 걸었다. 하지만 힘든 노력은 어디로 간 것인지 어느 날부터는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시댁 현관문 앞에는 작은 의자가 놓여 있는데 그곳에 앉으면 바깥바람도 쐬고, 해도 잘 들어 좋았다. 나도 지칠 때면 가끔 그 의자에 앉은 적이 있는데, 시어머니는 그 의자에서 멍한 모습으로 앉아 있곤 했다.

멀리 하늘을 보는 듯 허공으로 향한 눈빛은 이미 어머니가 멀리 떠나버린 듯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그런 어머니를 볼 때면 나는 떠나는 시어머니의 발걸음을 돌리려는 듯 가까이 가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는데 잠시 그러고 나서 다시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며칠 후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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