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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pr 15. 2024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25. 늘어만 가는 불가능

전화벨에도 기겁할 노릇인데 가끔 요란한 재난 문자가 왔다.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쐈다는데, 이렇게 죽음의 기로에 있을 때면 그것도 어떤 식으로는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살기는 힘들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중환자실에서는 11시 즈음에 전화로 시어머니의 안부와 치료 내용을 알려준다.

중환자실의 전화는 시누이가 받아서 통화 녹음본을 보내준다. 그리고 통화의 중심 내용을 문자로 보내주기도 하는데, 나는 바로 녹음본부터 듣는다.


녹음본이 오기 전까지는 초조하다. 그래서 거실을 서성이기도 하고, 일부러 정신을 딴 데 팔려고 텔레비전을 틀기도 한다.

어제는 혼자 산책을 했다. 그러다가 톡이 와서 한구석 벤치에 앉아 통화 내용을 집중하여 들었다.

전해진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사실 늘 이런 말을 들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삽관을 빼기 위한 시도를 했는데 2시간이 되자 다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이산화탄소 수치가 올라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너무 힘들다고 해서 결국 산소 압력을 넣었다고.

삽관을 빼기 위한 시도는 모두 실패였다.

여전히 미련이 남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지 물었지만 지금까지 한 것 만도 많이 한 편이라고 했다.

이제 기관 절개 삽관만 남은 건데, 그건 어머니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던 일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기관 절개를 반대했던 어머니의 생각을 전했다. 시어머니는 2019년에 일부러 건강보험공단을 찾아 연명의료 반대에 서명을 하신 상태였다. 시댁 형제들은 그 사실에 조금 놀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서명대로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나 소중한 엄마인가 말이다. 그들이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사랑은 나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 어머니의 잠자리를 봐 드리고 방을 나서려는데 어머니가 나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발을 나란히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겹친 발도 나란히 하기 힘든 상태였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까지 거친 지금은 더 약해지셨을 거였다. 그런 분이 목에는 호흡기를 달고 뱃줄로 영양분을 얻고, 소변줄로 배설을 하는 힘든 과정을 다시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나에게 ‘하나님한테 나 데려가라고 기도해라’라고 했던 어머니였으니 이제 편히 보내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어머니 연배라면 죽음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사람에겐 평균 수명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건강하게 오래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머니가 저렇게 고통스러운데 자식 욕심만 부릴 수는 없지 싶었다.

나는 할머니와 아빠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힘든 과정을 보았다. 그 과정을 건너뛰고 죽는 이는 없으니 지금이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더 늘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절대 쉽게 내놓을 수 없는 말이었고, 내게 그 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요즘 더 어머니가 만나고 싶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면서 아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 참 미칠 노릇이다. 모든 것이 불가능한데, 나의 불가능은 자꾸 늘어만 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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