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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pr 17. 2024

삶은, 뭘 알고 사는 것이 아니다

26. 그냥 그리 되어 그렇게 산 것뿐

어머니의 기관절개가 결정되었다.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심각한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폐가 막혀서 숨을 쉬기 힘들었으니 폐가 펴지면 달라질까 했다.

그건 우리 멋대로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당연한 듯 말했다.

'노화'라고.

폐를 인공적으로 폈지만 노화로 모든 기능이 떨어져 숨을 쉬지 못하는 거라고.


걷기도, 삼키기도, 뱉어내기도 힘들어했던 어머니의 몸이었다.

생각하자면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소화기능이 좋다는 것, 배변이 이루어진다는 것 등

다른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기대했다.

그의 바람대로 되기를 나도 기도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시어머니까지라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어제 의사의 절개술 이야기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연명의료를 거부했던 어머니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걱정스러웠다.

자식들이 모두 절개술을 하고 쾌차하기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싫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

다행히 간호사의 전언으로는 어머니도 좋다고 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다행스러웠다.

모두 같은 것을 원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어머니는 원치 않는 것을 자식들 욕심에 하지 않을까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이어 의사와의 통화 내용이 전해졌다.

의사는 담담하게 절개술은 꼭 필요한 상황이지만

절개술에 우리가 잡으려는 희망은 들어 있지 않다고 설명해 주었다.

폐를 펴고, 절개술로 호흡을 돕지만, 그것으로 이후에 자가 호흡이 될 거라는 기대는 어렵다는 것이다.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어머니는 절개기관으로 호흡하고, 콧줄로 영양을 받으며 사셔야 한다.

어머니가 절대로 원하지 않았던 모습이었지만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우리는 이렇게 흘러올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탓도 아니다.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만나기를 바란다.

잘 적응하고 이겨내셔서 눈을 맞춰보고 싶다.

너무 안타까운 모습이라 눈물을 참기 힘들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수순이라면 받아들이고 살아내야 한다.

다만 어머니의 고통이 너무 크고 길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어머니의 선택에 작은 기쁨이라도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모르는 것이 아주 많다.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 모른다.

아빠 때는 그런 선택을 했고, 어머니는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뭘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삶은 우리가 뭘 알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리 되어 그렇게 산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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