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 Apr 22. 2024

힘들고, 아픈 고백

27. 난 그처럼 아프지 않다

시어머니의 중환자실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는 왜 어머니까지 떠나려 하냐며 울었다.

아빠를 보내고 겨우 반년이 지났는데

나보고 또 이런 일을 겪으라는 거냐고 울어댔다.

그러면서 난 참 내 생각만 하는구나 했다.

사람은 참 자기 입장이 먼저구나 했다.

자기 설움에 운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했다.   

   

최근 나는 사람이 얼마나 자기 위주인지 똑바로 보았다.

한치 걸러 두치라고 말하는데

나는 한치의 차이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시어머니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컸지만

아빠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마음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를 통해 보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분명한 것이었다.      




사실 아빠를 떠나보내며 슬픔과 괴로움은 오로지 자신의 것임을 느꼈다.

남편과 아들은 가족이긴 하지만 나의 슬픔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의 슬픔 중 대부분은 아마도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아빠를 보내며 우는 나를 살뜰하게 챙기는 남편을 보며

잠깐 불편한 맘이 들었다.

나 챙길 생각만 하는 것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넌 하나도 슬프지 않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맞다.

그는 나처럼 슬플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얼마 후, 요로 결석으로 아파하는 남편을 보는데

안타깝기는 그지없었으나, 그 아픔이 내 것이 아닌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순간 드는 마음이었지만 난 다시 한번 알았다.

너의 아픔은, 나의 아픔은 모두 혼자만의 것이라는 걸.      


오래전부터 나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몫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려움도 괴로움도 아픔도 슬픔도.

무엇이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사람마다 자기 몫이 있으니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너무 욕심낼 이유도 없었다.

내 몫이 아니라서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이며,

내 몫이면 욕심내지 않아도 내게 돌아올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엄청난 슬픔을 겪고 나니

내 몫의 일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얼마나 자기 위주로 슬픔과 기쁨을 생각하고 여기는지 알았다.

그건 좀 끔찍한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감당이 되는 일에는 이성적일 수 있으나

감정의 소용돌이가 강렬할 때는 달랐다.

사이코패스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사람이 비슷했다.

사람은 같은 슬픔을 겪은 사람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열고,

엄청난 슬픔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가 겪은 것을 나도 겪고 나서야 겨우 이해하고,

그가 겪은 것이 내겐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안심하며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닌지.


그러고 보면 마음은 한없이 말랑하다가도

아주 단단한 방패를 가지고 있다.

자기 맘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어찌 그럴까’ 싶은 맘을 품으니 말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참 힘들고, 아픈 고백을 했다, 지금.      

이전 06화 삶은, 뭘 알고 사는 것이 아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