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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pr 29. 2024

그저 지독한 고통

29. 그리움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요양병원에서 응급실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그리고 기관절개 후 다시 중환자실에 계시던 시어머니는 드디어 일반병실로 가셨다. 일반병실에서 회복하고 나면 퇴원하게 된다.

일반병실에 계신 시어머니는 간병사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간병사는 어머니 대신 전화를 받고, 자식들이 보내는 문자를 읽어주며 우리와 소통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말을 할 수 없으니 간병사가 일부러 살피고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라 늘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고 또 하며, 자연스레 죽음 관련 책을 읽었다. 그중 한 책에서 떠나는 사람이 남은 이들에게 남길 말을 정리해 주었다.

‘나를 용서해 줘요.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잘 지내요.‘

다섯 가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 말이면 충분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나니 좀 맘이 놓이는 것 같았다.


부모님의 노쇠함과 떠남은 남은 자식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나는 지금 떠난 아빠를 통해, 여전히 우리를 걱정하는 엄마를 통해, 아픈 시어머니를 통해 삶과 죽음을 배우고 생각하고 있다. 그분들은 몸소 나를 가르치고 있다. 부모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며, 나는 내 삶과 죽음을 준비하게 될 듯하다.     



하지만 무섭게 아빠가 그리운 날도 있다.

새벽부터 아빠 생각이 끊이지 않아 미칠 지경이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거고, 누구나 죽는 거라는데

그리움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죽은 이는 원소가 되어 별이 되고, 자연이 된다는데

남은 이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자연스럽던, 누구나던

그건 모두 죽은 이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남은 이는 그렇지가 않다.

너무 낯설고, 그리워서 어쩌지를 못하겠다.

죽음의 과정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는 걸

무수한 경험 속에 겪는다고 해도

그 순간엔 그저 지독한 고통일 뿐이다.

난 어쩌지를 못하겠다.


내가 이렇게 슬프고, 그립다는 걸 말한대도

달라지는 건 없고

울고불고 몸부친대도 달라질 건 없다.

아, 그리워서 어쩌나

아, 너무 미안해서 어쩌나     


이성적이려고 했다.

다른 이의 슬픔에 위로도 하고, 도우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일인가.

나도 지금 이렇게 아픈데

내 아픔도 어쩌지를 못하는데 

누굴 돕고, 위로한단 말인가.

너무나 사무치는 시간이다.      


다시 아빠 생각에 몸부림치다

이제는 달라져야지 하는 맘을 먹은 즈음.

내 맘 한구석에서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떤 소리도 내겐 틀릴 리 없었다.

아빠를 잘 보내드렸다는 생각과

아빠를 그리 보내 다니 하는 생각.

내 상황에 이제 시부모를 도와야지하는 생각과

내 상황에 그건 곤란하다는 생각.

모든 맘이 뒤엉켜 나란 존재는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주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며 울어대고

너무 많이 울어서 눈가가 짓무른 듯 아프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낮을 보내고

밤엔 깊은숨을 내쉬며 다시 눈물을 흘린다

이전에는 경험한 적 없는 통증을 느낀다.

나도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잘 모르는 상태로 살아봐야 할 것 같다.

그냥…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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