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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May 06. 2024

엄마, 우리 시어머니랑 친해?

31. 엄마의 눈물

기관절개로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기관 절개를 하고 일반 병실로 옮긴 시어머니는 2주 후에 콧줄을 빼고 뱃줄이라고 부르는 위루관 시술을 하셨다. 

배를 통해 위로 바로 관을 꽂아 영양식을 넣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콧줄보다는 뱃줄이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덜하다고 한다. 

하지만 크든 작든 몸에 칼을 대는 것이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감염의 위험은 더 커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안타까워서 어쩌지를 못하겠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어디에 계시는 건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낯설고 빠르게 달라지는 거 같아 때때로 너무 혼란스럽다. 

다행히 남편은 위급한 상황이 지나간 것에 그나마 안심하는 거 같다.      

하지만 간병인은 시어머니가 아파서 고생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언제쯤 끝날 수 있는 아픔인지 모르겠다. 

가래가 입에서 많이 나온다고. 

뱃줄 시술하는 날에는 마스크를 한 상태로 가래가 그대로 흘러 가슴까지 적셨다고 한다. 


그제 치과 치료를 받으며 입을 벌리고 있다가 어머니 생각을 했다.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는 동안은 모든 것이 스톱이다. 

답답함에 잠깐 목젖을 움직여보는데 그런다고 제대로 침을 삼키는 건 아니다. 

뭔가를 삼킨다는 건 정말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마무리되는 것이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그 상황에 답답함이 몰려올까 나는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버티고 치료를 마쳤다. 

그런데 어머니의 상태를 전해 들으니 다시 그때가 생각났다. 

입에서는 끊임없이 침이 나오는데 하나도 삼킬 수 없으니 입안 가득 고인 침은 그대로 흘렀을 것이다. 

기관절개를 했으니 뭔가를 삼킨다는 건 더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가뜩이나 기침도 삼킴도 불편했던 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나. 

난 그 끔찍한 고통과 답답함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예전에도 ‘어머니 지금 뭐가 제일 힘드세요?’라고 물으면 ‘가래’라고 답하셨었다. 

그 문제를 해결해 내려고 약을 먹고, 썩션 기계를 사서 가래 빼기에 나섰는데 

결과는 신통치가 않았다. 몸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 거다.      

연하 장애(삼킴 장애)는 노인 3명 중 1명이 겪는 증상이라고 한다. 

어떤 의사는 노인들은 음식을 삼킬 때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삼킬 때마다 아파서 먹기가 힘들다는데, 고통의 원인을 뚜렷이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아산병원에서 더 세밀하게 원인을 찾는 기술을 적용 중이라고 하는데 아직 그 효과는 발표된 바가 없다. 

그저 노력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하긴 어떤 경우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입원 전, 시어머니는 어떤 날은 금방 돌아가실 듯이 힘들었지만 

또 어떤 날은 같이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어쩌면 그런 날을 보내며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주어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며느리인 나는 그저 시댁 식구들의 결정에 따를 뿐이다. 




오전에 엄마한테 갔는데 엄마가 시어머니의 상태를 물었다. 

시어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엄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아, 엄마도 잘 묻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늘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뱃줄 시술을 했다고 말하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 울어?"

내가 애써 아무렇지 않게 물었지만 엄마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엄마가 시어머니 본 지가 언제더라? 우리 애 돌 때 보고 본 적 없잖아."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눈물이 무엇 때문인지는 알고 싶었다. 혹여라도 연명을 포기한 아빠 생각에 그런다면 그건 정말 싫었고, 나는 다른 상황임을 설명하고 바로잡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는 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엄마가 진정을 하고 난 후, 나는 물었다. 

"엄마, 아까 왜 울었어? 엄마 우리 시어머니랑 친해?"

일부러 장난을 하듯이 웃으며 말했는데 엄마는

"늙어서 그렇게 고생하시는 게 안타까워서 그랬지. 왜 그렇게 몸을 뚫어서 힘들게 해. 살만큼 살았으니 편히 계시게 하지."

노인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삶과 죽음에 여유 있는 답을 하곤 했다. 

노인은 몸은 연로하여 쇠약해지지만 정신만은 달랐다. 우리가 엄살 부리듯 걱정하는 죽음을 노인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걸어가려 했다. 

엄마의 말에 나는 더는 장난스런 말을 보탤 수 없었다. 나도 엄마처럼 시어머니가 한없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가 없다. 힘들겠지만 고통스럽겠지만 잘 적응하여 살아내시기를 바란다. 어쩌면 기적처럼 건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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