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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May 13. 2024

혼자 남은 시아버지

33. 아이고, 너를 어쩌면 좋으니

시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우리 부부의 빨간 날은 대부분 시댁에 가는 날이 되었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최대한 받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우리가 가서 돌봤다.

시어머니가 입원하시기 전엔 어머니 드시기 좋은 음식을 준비해서 식탁을 차렸다. 내가 식사 준비를 마치면 남편이 어머니 옆에 앉아서 식사 시중을 들며 시아버지까지 세 식구가 함께 식사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면 나는 주방 정리를 하고, 남편은 시댁 청소를 했다. 요양보호사가 온다고는 하지만 너무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굵직한 일은 우리가 다 했다. 요양보호사에겐 그저 부모님 식사를 챙겨주고, 안전하게 잘 지내시는 것만 도와주기를 바랐다.


시어머니가 입원을 하고 난 후, 난 시댁에 가는 일이 전처럼 좋지 않았다. 시아버님이 계시니 챙길 일은 여전히 있었는데 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시아버지가 좀 미웠다. 그 연배 어르신들이 그렇듯 시아버지는 권위적이었다. 권위적인 침묵을 보이다, 권위적인 한 마디를 내뱉곤 했다. 가끔 아내인 어머니에게 함부로 행동해서 보기 불편했다.  


하지만 실상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의 보살핌 덕에 사는 사람이었다. 당뇨가 있어서 하루 세끼를 정확한 시간에 드셔서 시어머니는 밥 하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래도 시아버지는 꿈쩍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방식대로 사셨다. 늘 같은 시간에 세끼 밥을 먹고, 운동을 하셨다. 나는 기력이 떨어져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배려하지 않고, 당신 몸 관리에만 철저한 시아버지가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날은 시아버지가 진을 다 빼서 어머니가 그리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린아이 같이 원망하는 맘만 품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남편과 시누이를 도와 시아버지를 돌봤다. 시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을 사다 날랐다. 여러 가지 국을 사서 소분하여 얼렸다가 드시게 했다. 나는 당뇨가 있는 분이고 날도 더워지니 간단한 거라도 바로 해서 먹을 수 있게 했으면 했다. 그래서 시누이에게 요양사에게 식재료를 사다 주고 한 가지 정도씩 해달라고 하자고 했다. 쿠팡에 컬리까지 식재료를 준비하는 일은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누이는 그러면 자기가 더 신경이 쓰여서 불편하다며 거절했다. 친딸이 그렇게 나오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뒤로 물러나 주말에나 드실 것을 챙기고, 시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다.


시어머니의 일이 가장 다급했을 뿐 시아버지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시아버지는 당뇨로 발가락 수술을 했고, 수술 이후 반년 넘게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검진을 다니고 있다. 그 외에도 당뇨 검진에 방광 검사, 고관절 수술 부위의 통증으로 정형외과 진료 등 다양한 돌봄이 필요했다. 시누이가 전체 일정을 관리했지만 그중 반은 내가 모시고 가거나, 다녀와야 했다. 가끔 하루에 몇 군데 병원을 다녀야 하는 날도 있어서 병원을 돌고 집에 돌아갈 때는 내가 환자인 기분이 들 정도로 힘이 들었다.      




시아버지보다 건강하던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보다 건강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시아버지가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남편과 형제들은 시아버지에게 시어머니의 상태를 알리지 않았다. 그냥 잘 계신다고만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관절개 후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을 때 시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렸다. 평소에도 표현이 많지 않던 시아버지는 조용히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우리를 볼 때마다 어머니 잘 챙기라는 당부를 했다. 당신의 걱정을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남편이 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를 보고 시아버지의 맘이 더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그리운 마음도 채울 필요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날을 잡아 시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다.

병실로 가장 먼저 시아버지가 들어가셨다. 그리고 조금 후에 자식들이 들어갔다. 어머니는 시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시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5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두 분이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적이 있었을까? 시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감싸고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너를 어쩌면 좋으니, 어쩌면 좋아."


시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도 한껏 얼굴을 찡그려 눈물을 흘리셨다.

저 두 분을 어쩌면 좋은가, 안타까워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 그 장면을 벌써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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