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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May 15. 2024

진짜 슬픔은 꺼내놓지 못하고 산다

34. 슬픔이 전염될까 봐

토요일, 남편 늦잠 자라고 암막 커튼을 단단히 여미고 방을 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아버지였다. 지난밤 쓰고 두었던 찻잔을 마저 닦고 방으로 들어가니 남편은 이미 욕실에 들어가 씻고 있었다.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한단다. 무슨 일이냐니 시아버지가 수술한 발가락이 아파서 잠을 못 잤다고, 발가락에서 피도 났다고 한다.


서둘러 종합병원 담당의 스케줄을 찾아보았는데, 진료가 없었다. 토요일이니 진료하는 의사가 몇 없었다. 병원 간호사와 통화가 되었는데 타이레놀 먹고 월요일에 일찍 오라고 한다. 수술한 상태라 다른 의사가 볼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정 힘들면 근처 정형외과나 외과에 가보라고 하는데 가면 드레싱 정도 해주고 약을 지어줄 거라고 한다. 그래도 남편은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서둘렀다. 이런 상황은 그간 수시로 반복되어 왔다. 시부모님에게 생기는 크고 작은 일이 우리 부부에게 전해졌고, 그러면 우리는 허둥지둥 시댁으로, 병원으로 갔다.


저녁 8시가 다 되어, 남편은 지칠 대로 지쳐서 돌아왔다. 지침은 어느새 짜증과 섞여 있어서 보는 것이 편치 않았다. 남편은 자신이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시아버지의 한숨을 현관에서 부터 쉬며 들어왔다. 우리의 주말은 거의 이런 식이었다.   

   



며칠 후, 시어머니 면회를 갔다.

시어머니에게 안부를 묻자 어머니가 내게 한 말은 ‘빨리 죽어야지’였다.

그건 자식들에게 하지 못했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 같았다.

남편과 시동생은 ‘우리 엄마 정말 좋아졌네’라며 연신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자식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리를 내지 못하니 입모양으로 죽어야지 하는데 그 말을 나는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하고 있으면 소리 없는 입모양도 쉽게 알아채는 법이었다. 예전 힘겹게 계단을 오른 후 쓰러져 앉아서 내게 했던 말을 기관절개로 인공호흡기를 단 어머니가 다시 했다. 나는 그 말이 뜨거운 불에 데인 것처럼 아팠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이 다 하시는 일이다. 맘 편히 먹고 계시라고 말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내 말에 어머니는 어쩌면 자신의 하나님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어머니는 이전보다 많이 좋아지셨다. 그래서 죽어야지라는 말도 하시는 걸 테고, 자꾸 목관을 손으로 빼는 것이기도 할 거다.       

    



시어머니 면회는 금요일 3시다. 이 약속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를 제외하면 늘 지켜지고 있다. 언젠가 요일을 한번 바꾼 적이 있는데 기다리던 자식들이 오지 않자 어머니는 목관을 빼는 등 난리가 났다고 한다. 자식들이 자신을 잊거나, 버렸다고 느꼈던 거 같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도 일은 일어나곤 했다. 시동생이 코로나에 걸려 못 오게 된 것이다. 시동생에게 맞췄던 시간을 조금 당겨 지난주부터 1시에 면회를 갔다. 시간이 당겨지자 낮에 주로 잠을 자는 시어머니는 흐릿한 상태로 우리를 만났다. 지난주에는 졸린 것을 참아내려 애를 쓰는 것이 보이더니 이번 주에는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편히 주무시라고 머리를 만져주니 가뜩이나 졸린 어머니는 잠에 빠져들었다.


면회를 다녀온 후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은 어머니의 짧은 머리였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어머니의 머리는 길게 자라 있었다. 하지만 누워 있어 머리를 온통 뒤로 넘긴 탓에 특별히 길거나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노인의 머리가 길어봤자 그 가늘고 줄어든 숯이 도드라질 리 없었다.

하지만 간병인은 관리를 위해 목욕할 때 뒷머리를 잘랐다고 했다. 우리는 그걸 노련한 간병인의 판단으로 여겼다. 길게 자란 뒷머리가 짧아지니 편할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번주에 가보니 앞머리만 두고 뒤통수를 거의 밀다시피 해서 잘라두었다.


아픈 노인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건 모두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거. 시어머니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그 모습이 자꾸 떠올라 침대에 누웠는데 맘이 좋지 않았다.

맘이 좋지 않을 때면 나는 그 나쁜 맘, 슬픈 맘을 떨치려 머리를 흔들거나, 다리를 툭 떨어뜨려 내린다. 그런 날 보고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차마 시어머니 머리 때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는 더 많이, 더 오래 그 일을 곱씹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했다. 우리는 서로 진짜 슬픔은 꺼내놓지 못하고 산다. 슬픔이 전염될까, 상대의 슬픔을 더 크게 만들까 두려운 것이다.


시누이는 목관을 한 어머니의 기대 수명을 3개월 정도로 생각했다. 요양병원에서도 그리 말했고, 아는 의사에게 물으니 뱃줄이나 콧줄로 먹는 식사는 그리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뱃줄이건 목관이건 모든 인위적인 것이니 온전한 생명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더 한계가 있는 것일 테고. 어찌 되었건 어머니의 고통이 크지 않기만을 바란다. 고통이 길지 않기 바란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그리 삶을 구걸하듯 사는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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