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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May 20. 2024

고통스런 표정만 드러났다

35. 응급실로 간 시아버지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온 가족이 아빠 산소에 모였다. 아빠를 만나러 우리가 이렇게 다 모였는데 정작 그리운 아빠는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아빠의 얼굴이 기억난다. 아빠의 말소리도 기억난다. 언제부턴가 내가 아빠의 손톱을 깎아드렸는데 아빠의 손톱도 기억이 난다. 아빠의 수염은 언니가 깎아줬으니까 언니는 아빠의 수염이 기억날 거다.

작년 언젠가는 내가 아빠의 머리칼을 잘라줬었다. 머리 자른다고 아빠가 힘겹게 자세를 잡고 앉아 있어서 맘이 바빴었는데, 어느새 아빠의 산소 앞에 있다. 다시 기가 막히다.    

 



부모님이 떠나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명절이 간소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명절은 그래도 명절이니 모두 부모를 찾아갔다. 산소로 요양병원으로.

언니는 시어머니를 뵈러 요양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언니네 시어머니는 치매로 몇 년 전부터 요양병원에 계신다. 어떤 날은 막내며느리인 언니를 큰며느리인 줄 아신다는데, 요즘에는 전쟁통에 계신다고 한다. 많은 기억을 잃고, 지금 남은 기억이 전쟁통인 것이다.

언니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시더란다. 태평한 시대의 기억이었다면 그나마 좋았을 텐데, 불안하고 무서운 시대를 기억하고 그 속에 남아 계시다니 더 안타깝다. 전쟁의 불안이 어르신에게 매일 이어지지는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산소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은 혼자 계신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곧 명절이니 우리 집에서 식사하고, 하룻밤 자고 가시라고 했다. 시아버지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몸이 힘들어서 다 귀찮다고 했다. 하지만 명절이니 점심 먹으러 가겠다고만 하셨다.      

명절날 오전이 되어 시동생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우리집으로 왔다. 어머니도 편찮으시고, 아들도 군에 있어서 모두 모이니 네 명뿐이었다. 기름 냄새 풍기며 요리할 상황도 아니어서 저녁거리만 준비해 두고 점심은 한정식집에서 먹기로 했다. 음식점에 가자 시아버지는 그런대로 식사를 잘하셨다. 이후 저녁 식사까지 하시더니 주무시고 가시라는 우리의 청을 더는 거절하지 않으셨다.  


시아버지는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에게 침대 옆 소파에서 자라고 했다. 밤에 혼자 화장실 가기도 불편하고, 숨쉬기도 편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들방에 두 사람의 잠자리를 봐주고 나도 안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집안에 불을 모두 켰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다는 거다. 시간은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시아버지는 그 새벽에 응급실에 갔고, 그 길로 입원을 했다.      


노인의 병환은 시한폭탄 같았다. 응급실로 간 시아버지는 응급처치로 떨어진 산소포화도를 올리고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입원을 하여 이런저런 검사를 해볼 필요는 있었다. 평소 건강 관리에 철저한 시아버지는 병원 입원을 다행으로 여기는 모습이었다.  

입원 후, 하나하나 검사를 다시 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예전에 했던 혈관 시술을 다시 했고, 발가락 염증도 다시 살폈다. 의사는 발 수술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명절에 우리집에서 주무시면서 시아버지는 시댁 근처 종합 병원이 아닌 우리집 근처 아산병원으로 입원을 했다. 자연히 담당 의사가 바뀌었고, 담당의사는 이전 치료가 잘못되었다며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긴장 상태가 되었다. 심하면 발목까지 절단한다는 말에 가슴이 떨렸다. 의사는 당뇨 환자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지만 너무 안타까워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수술을 준비하며, 늘 그렇듯 시어머니 면회를 갔다. 어머니는 이틀간 열이 나서 고생을 하고 난 후였다. 힘들게 지내서인지 시어머니의 상태는 훨씬 나빠보였다. 그 모습에 병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눈물이 났다. 한 구석에서 눈물을 닦고, 눈물 구멍을 막듯 꾹꾹 눈가를 누르고 나서야 어머니 가까이 갔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도 눈을 잘 맞추지 못했다. 겨우 눈동자를 움직이는 정도였다. 인공호흡기를 하고 몇 년을 사는 사람도 있다는데 어머니는 며칠 사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간병사는 목관을 통해 가래를 빼주었다. 목관에는 여러 개의 관이 밖으로 나와있는데 그중 하나에 주사위를 끼워 가래를 끄집어내는 거다. 그러자 어머니는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 표정 없던 얼굴에 고통스런 표정만 드러났다. 시동생이 굳어버린 다리를 움직여주려 할 때도 찡그렸다.


손을 잡고 주무르는데 시어머니는 내 손을 잡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손을 잡아달라고 했던 어머니였고, 내가 잡은 손을 더 힘껏 맞잡았던 어머니였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쭉 뻗어 있는 손가락을 가만히 주무르며 마디를 움직여보려 했지만 굳어버린 것처럼 단단했다. 혹여 아파할까 봐 더는 해볼 수 없었다. 그냥 손을 잡고 가만히 쓸어주었다.

내가 아는 시어머니는 이미 저만치 떠난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빈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한 눈빛으로 천장만 바라보다, 눈을 감곤 했다.




아빠를 떠나보낸 후 내내 일렁이는 내게 시어머니에 이어 시아버지까지 입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답답증에 긴 숨이 나온다.

내 주변에, 가까이에, 죽음이 너무 많다.

숨 쉬는 곳곳이 죽음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떤 날은 이렇게, 어떻게 살라는 건지 막막하다.


하지만 태어나고 죽는 일은 숨 쉬는 일처럼 흔하게 일어난다.

나 하나 죽고 사는 건 세상에 아무 일도 아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그런데 어떤 때는 숨 쉬는 일처럼 일어나는 그 일이 무게를 가늠하기 힘들게 무겁다.

그런 일들 속에서 나는 가볍게 살아내야 하는 거다.  

잠시 잊고, 잊어버리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그게 잘 안돼서 늘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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