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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pr 10. 2024

시어머니의 당부

24. 절대로 목에 구멍 뚫지 마라. 그건 절대 하지 마라


지난겨울 아빠를 두고 ‘이미’인지 ‘아직’인지 알 수 없어 애태웠는데,  다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환자실에 계신 시어머니는 여전히 기관삽관 상태다.

입으로 튜브를 넣어 호흡을 돕는 것인데, 병원에서는 이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2주 정도라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최대 19일이라고 나온다.


기관삽관이 길어지니 어느 날부터 턱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계속 입을 벌리고 있을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내 몸에도 그런 통증이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통증은 맘 속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일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병원에서는 스케줄을 잡아 시어머니의 자가 호흡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제발 성공해서 삽관을 빼고 퇴원하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성공할 듯 성공할 듯 실패했다. 2주 동안 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나면 기관 절개를 고민해야 한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언제고 무릎을 꺾고 엎드려 기도를 했다.      

제발 어머니에게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그것이 나의 바람인데,      

그것이 어머니의 고통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런 생각이 들면 욕심을 부리는 것만 같아 기도도 조심스러웠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재활의학센터로 운동을 다닐 때였다.      

어머니는 요양보호사와 나의 부축을 받으며 집 현관까지 이어진 계단을 올라왔다. 중간중간 힘이 들어 쉬기도 했는데 거의 기다시피 현관에 이른 어머니는 그대로 쓰러져 앉아버렸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서 나 죽으라고 기도해라. 하나님한테 나 데려가라고.”     

어머니는 친자식에게는 하지 않을 말을 내게 했다.      

너무 힘들어서 살고 싶지 않다고.      

그 순간 그게 어머니의 진심이었다.  

              

시어머니는 보통 엄마가 딸에게 하는 것처럼 내 이름을 부르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친모녀 사이는 아니라 더 솔직한 말을 주고받았다. 어머니는 친자식이 들으면 가슴 아플까 못할 말을 내게 했고, 나는 우리 엄마가 걱정할까 못할 말을 시어머니에게 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오랫동안 전화 통화를 할 때가 많았다.              

  

언젠가 반포대교를 지나는 차 안에서도 어머니는 나와 남편에게 당부하셨다.     

“절대로 목에 구멍 뚫지 마라. 그건 절대 하지 마라.”     

시어머니 주변 지인과 친구들이 노쇠해지는 것을 이야기를 하며 그 말씀을 하셨다.      

연명의료에 반대하는 것은 나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자식이 그런 말에 동의를 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며느리가.      

어머니의 당부에 ‘하면 하는 거지’라는 말을 작게 뱉어내는 시아버지를 보니, 함께 있던 사람 중 그 말에 의미를 담는 사람은 나뿐인 거 같았다. 삶을 바라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맞고 틀리고는 없었다.                          




시어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시며 기도는 반복되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 생각이 항상 났다.      

아빠를 그리 떠나보내고, 난 지금 뭘 하나.     

어머니의 완쾌를 기도하며 떠난 아빠를 기리는 것.      

나의 기도는 그렇게 짬뽕이 되었는데.      

모두 떠나야 하는 거라면, 모두 떠나고 마는 거라면      

연명의료를 포기한 아빠의 떠남은 적당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모두 어딘가 아쉽게 마련이다.      

사람의 생각 중에 후회가 아닌 것이 있기나 할까.      

그건 삶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으니 정답처럼 살 수 없고, 그러니 후회는 필수가 된다.      

후회가 된다고 해서 잘못 산 것이 아니다.      

삶에, 선택에 후회는 필수인 것이다.      

그저 후회를 붙잡고 늘어져 있을 것인가,

선택을 붙잡고 의미를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      

의미라는 거,      

가만히 생각하면 거창한 거 아니다.      

내가 만들면, 내가 그리 여기면 의미가 되는 거다.      

소중하다 여기면 소중한 물건이 되고, 소중한 사람이 된다.      

나는 아빠가 떠나신 것이

어차피 모두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죽음에 이르는 길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니,     

그 어려운 숙제를 그때 치르신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리고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엄마의 인생을 남겨주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시어머니의 시간이다.      

어머니는 지금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서 기도한다.      

검은 지옥 속에 있는 듯이 고통스러울 남편을 위로하고,      

그가 가지는 희망을 같이 품어 키워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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