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구부정했다.
“00 씨, 어깨를 좀 펴. 그게 뭐야 할아버지 같아.”
내 다그침에 남편은 억지로 등을 바르게 하고, 어깨도 편다.
얼마 전에는 안경을 끼고 있던 내게 남편이 한소리를 했다.
“왜 그래, 할머니 같잖아.”
내게는 돋보기와 근시 안경 두 개가 있는데 그때 나는 텔레비전을 보느냐고 근시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근시 안경을 쓸 때는 가까이에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안경을 코끝으로 내리고 맨눈으로 핸드폰의 글자를 읽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할머니들이 코끝에 안경을 걸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사실 남편과 나는 늙었다고도 젊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늙어 보이고, 어떤 때는 덜 늙어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의 늙은 모습이 보일 때면 득달같이 나서서 서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허리 똑바로 펴고 걸어라, 운동해야 한다, 어서 병원 가라,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 등등 잔소리를 한다.
남편과 내가 만난 때는 막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보아왔으니 우리는 서로가 가진 삶의 궤적을 알고 있고, 같이 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녀가 늙는다는 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꾸부정한 것은 상관없어도 그가 할아버지처럼 꾸부정해지지는 않기를 바라고, 자기는 한껏 인상을 쓰며 글을 읽어도 내가 할머니처럼 안경을 쓰고 책을 읽지는 않았으면 하고 있다.
언젠가 시어머니는 자신 늙는 건 괜찮은데 자식들이 늙는 게 제일 아깝다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가 어른되고, 노인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학생이던 아들이 군대에 가고 제대하고 나더니 곧 20대 중반에 이른다고 한다. 20대 중반을 지나고 나면 얼마나 빨리 30이 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나도 그때면 60대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아들의 청춘이 사라질까 아쉽기만 하다. 아들이 눈부신 청춘을 오래도록 누리기 바라는 맘이 드니, 중년이 되는 우리를 보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된다.
늙어가는 것이 아쉬운 건지 이리저리 생각을 털어놓고 있는데 이게 그냥 답 없는 수다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안다. 아쉬워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말이다. 그런데 책상 앞에 놓인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그저, 좋은 시간을 담아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웃음처럼 좋은 일을 만나면 많이 웃고, 즐기기를 바라. 하지만 분명 힘든 일이 생길 테니, 그때는 웃었던 기억으로 잘 이겨내렴. 나도 건강하게 내 옆에서 지낼 수 있게 노력하마.’
사진을 보며 뜬금없는 다짐을 하고, 나도 사진 속 아들처럼 웃으며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맡긴다.
그래, 잘 늙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