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 혹은 잔소리

by 안광식

'충고'는 사전적 정의로 "남의 결함이나 잘못을 진심으로 타이름"이라고 정의된다. 그리고 '잔소리'는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이라고 정의된다.


'나'라는 사람은 평소 입 밖으로 말들을 뱉어내지 않고서는 밥벌이를 하기 힘든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그 대가로 한 달에 한 번씩 그다음 한 달을 보낼 밥 값을 벌어간다. 사실 2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될 것이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삶에 대한 불안감이 많던 그 시기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라고 그럴듯한 말로 20대 후반에 나와 비슷한 나이 때의 사람들이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는 왜 지구 반대편 독일로 그것도 1년이나 떠나 있으려 하는지 설명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역시나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1년 정도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가능성 있어 보이는 어떤 사업들을 내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를 벤치마킹하여 지금껏 모아둔 돈으로 작게 사업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1년간 내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분야는 공부가 아니라 외국어였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때로는 한국이었다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낯부끄러운 말들도 외국어를 사용하면 뭔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괜히 편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유럽에서의 1년은 내가 거점으로 살았던 독일과 그 주변 국가들로의 여행이 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과 함께 이러쿵저러쿵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들이 중심이 됐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귀국이 코앞에 다가왔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내 나이는 29살이 됐고, 이제는 어디서든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무렵 나는 카페에서 베를린에 위치한 여러 글로벌 스타트업 기업들에 이력서를 보냈다. 작년 3월부터 5월까지 50여 곳 이상의 해외 기업들에 구직 요청들을 해왔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받은 메일들엔 언제나 "I am sorry to inform you..."라는 답글이 내 마음을 후벼 팠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 삶은 돌고 돌아 20대 후반의 끝자락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됐다.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자기 밥 값 못하는 첫째 아들이 답답하셨을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도서관이든 카페든 이곳저곳 방황했던 내가, 이제는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라니.


어찌 됐든 하루 중 대부분을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한 수업당 최소 한 번 정도는 수업과 관련 없는 얘기들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얘기들의 끝은 결국 "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는 소 리" 정도의 느낌이 강하다. 분명 내 입장에서는 지난 내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충고'였는데, 번듯한 직장이 없던 몇 달 전 어머니의 말씀 또한 당신에겐 잔소리가 아니라 아마 '충고' 였겠지. 결국 '충고'든 '잔소리'든 말하는 사람보다 중요한 건 듣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형태가 어찌 됐든 간에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 건 분명 고마운 것이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충고는 나에게 잔소리로 들려올 뿐이다.


요즘은 학생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고 마음에 여유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들을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서도 대학 입시에 대한 불안감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야 하는 수없이 다시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다음날에 생기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내 충고는 분명 '잔소리' 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혼자 이런저런 공부들을 할 때쯤, 내게 남은 과제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은 잔소리꾼'이 될 수 있을까?"이다.


산다는 것을 두 가지 항목으로 나눠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실패한 사람들'로 나눠보면 각자의 기준에 사람들을 나눌 수 있을 테지만 감히 누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래, 결국 나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그저 각자의 선택이 이미 힘든 사람들의 하루에 적어도 '짐' 이 되지 않도록 상대를 배려해주는 것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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