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번째 설날

by 안광식

나는 새로운 어떤 일들에 크게 설레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보다 어렸었던 시절에 나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마저 느껴질 정도인데 그게 설렘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 알고 있다.


새로운 달력을 책상에 올려두고, 거실 한쪽 벽면에 걸어두니 오늘은 날짜 상으로 '설날'이다. 누군가에게 이 기간은 그동안 수고했던 자신들에게 선물하는 '여행'이라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자동차 뒷좌석에 안 그래도 피곤한 몸을 억지로 집어넣고 핸드폰에 시간을 맡긴 채 잠에 드는 지루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행히(?) 위의 사례들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대신 아침이면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방에 큰 차례상을 차리고 그 위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루 이틀 전부터 부지런히 준비하신 음식들을 그 위에 올려두곤 했던 게 명절이면 나에게 내려진 일종의 밥값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부모님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앞으로 우리 집은 명절이 되면 차례상을 준비하지 않고 대신 가족끼리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셨단다. 지금껏 살아오며 이런저런 새로운 일들을 많이 겪어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은 꽤 놀라운 일들 중 한 가지였다. 명절에 차례상 두 번, 일 년 중 제사 두 번 총 네 번의 제사를 지내던 우리 집에서, 더군다나 보수적이신 아버지의 입에서 그런 소식을 듣게 되니 막상 어제 저녁잠에 들기까지도 오늘 아침 우리 집의 모습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심은 단지 일어나지 않을 혼자만의 걱정거리였다는 걸 느끼기엔 잠깐이면 충분했다. 잠을 깨고 거실로 나가니 거실엔 우리 다섯 식구가 앉을 상 하나와, 그 위에 떡국들과 함께 곁들여 먹을 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다. 신기했다. 그 모습에 나는 잠깐이었지만 우리 집이 뭔가 '특별한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수십 차례의 명절들을 보내왔지만, 오늘의 아침은 아마 내가 그 시간이면 느껴왔던 감정들 중 뭔가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뭐랄까.. 처음으로 명절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일들에도 쉽게 설렘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오늘은 어째서일지 마음이 따뜻해졌을까. 오랜만에 우리 다섯 식구가 함께 명절을 맞이해서인지, 아니면 명절마다 많은 음식거리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오늘은 고생하시지 않으셨다는 게 기분 좋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올해 추석이 그다지 이전처럼 부담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서른 번째 삶은 뭔가 '새로운'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늘이 다른 이들로부터 시작된 한 가지 감사한 일이라면, 나는 이제 하루 한편 정도의 글을 적으며 오늘 이후의 날들을 보내고자 한다. 20대의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서른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뭐랄까 그 생각들에 대한 정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적어나갈 나의 생각들과 시각들 사이에서 흰색 바탕 종이 위로 기록될 글들이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기에는 아주 미숙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 글이 그리고 앞으로의 글들이 약간의 시간 때우기 정도로만 그친다고 해도 나는 충분하다.


앞으로도 기록할 그리고 기록될 글들과, 이 글을 읽고 또는 앞으로 읽게 될 사람들을 위해, 그럼 올 한 해 좋은 일들로만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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