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by 안광식

‘술’을 마신 다음날은 어디인지 모르게 뱃속 위장들 전체가 꼬여버리는 느낌이다. 길어야 2시간 이런저런 음식과 화젯거리들을 안주 삼아 기껏해야 나 한 잔, 너 한 잔이 다인데, 감당해야 할 것은 하루 반나절의 속 쓰림. 2시간의 행복을 위해 그 이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니. 그러면서도 한적한 저녁거리를

걷다 보면 또 생각나는 게 ‘그 녀석’이라니.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른다는데, 내 속 깊숙하게 들어와 나에게 지친 하루를 선사하는 그 녀석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내 속은 어땠어?”


어찌 됐든 술을 마시게 되는 여러 상황들이 늘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게 위로받고 싶은 날이든, 위로해주고 싶은 날이든 혹은 축하해주고 싶은 날이든, 아무 이유가 없어서 라던지 간에. 결국에 ‘술’이란 녀석은 마지막엔 나를 아프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내 근처에서 내가 그를 찾아주기를 기다린다. 내가 ‘술’이란 녀석과 교류한지도 벌써 10년이나 됐으니, 이제는 그 녀석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할

이유를 찾기도 힘들고, 굳이 피하려는 변명 따위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래서 기왕 마셔야 한다면 나는 저녁에 한 잔 술을

걸치는 것보다는 점심 식사와 더불어 가볍게 반주 정도로 곁들여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직장생활을 했던 몇 년 전에는 점심시간에 선배들과 회사 근처 국밥 집에서 각자 순댓국 한 그릇 씩 각자 앞에 두고 어쩌다 한 번씩 운 좋은 날이면 이모님께서 썰어 주시던 서비스 순대에 소주 한 잔 걸치면 그 날 하루는 평소에는 대면 대면하던 선배들, 내 앞에서 늘 잔소리를 늘어 높던 선배들 과도 어쩐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이때의

자신감은 군대를 막 제대한 후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 그 느낌과 비슷했던 것 같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비록 자리에 앉아 소주를 3병, 4병씩 입에 털어 넣을 정도로 술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담배’와 ‘술’ 중 한 가지를 끊어야 한다면 쉽사리 ‘술’이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먹고살기 위해 발바닥에 신발 밑창 묵은 냄새가 발바닥에 배길 정도로 바쁜 날들을 보내는 나, 그리고 ‘우리’에게 평균적으로 일주일의 절반 이상의 목표는 어쩌면 ‘보통 삶’ 또는 ‘좋은 삶’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가 아닐까. 학생 시절에 어려운 문제에 머리를 쥐어짜고 있으면 선생님들은 “너희에게 어려운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거야”라는 말의 일반화로 우리를 위로하셨다. 그러니까 어떤 직업을 가졌든, 하루에 얼마의 시간을 업무에 쏟아

내던지 간에 우리 대부분이 각자 이런저런 일들로 지금도 누군가는 전화기 통화목록을 살펴보며 불러낼 사람을 찾아내고 있겠지. 모두에게 사연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이런저런 힘든 시간 들을 보낸 뒤 주말에는

진하게 한 잔이 아닌 점심에 가벼운 반주 한잔으로 한 주를 달래 보는 건 어떨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박카스 한 병으로는 부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