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서 처음으로 갔던 카페는 너무나 생소했다. 고등학생까지만해도 나는 몇몇 어른들의 말씀처럼 어른이 되기 전에 커피를 마시면 머리에 피가 말라버리는 줄 알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믿었던 나는 지금 내 모습과는 다르게 어딘가 순수했던 모습이 남아있던 것 같다.
오락실, 피씨방이면 공부라는 꽉 막힌 세상에서 벗어나 한 없이 자유로웠던 고등학생 시절을 벗어나 대학생이 되고 나니 친구들과의 만남은 어느덧 동네 어디 어디가 아닌 학교 주변 카페가 됐다. 2009년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어느 봄에 나는 난생 처음 '카페' 또는 '커피숍'이라는 곳에 가봤다. 그 전까지 '커피'란 내게 단지 '밀크커피' 혹은 '설탕커피'정도의 좁은 개념이었다. 하지만 왠걸. 처음 들어선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생 머리 위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메뉴판에는 '아메리카노'로 시작해 '카라멜 마끼아또'까지,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즐비했다.
"주문 하시겠어요?"
아르바이트생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커피라는 것은 그저 동전 몇개를 기계에 넣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마시고 싶냐는 질문이 어지간히 낯설 수 밖에 없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나는 아르바이트생의 질문에 최대한 어색해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잠깐 동안 어떤 메뉴가 좋을 지 고민하는 척 하며 이내 메뉴들 중 가장 세련되 보였던 메뉴를 선택했다.
"시럽도 함께 넣어드릴까요?"
눈 앞의 아르바이트생은 약간 놀란 분위기였지만, 이내 웃으며 내게 다시 질문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 나에 대한 걱정거리가 한 가지 있었다.
"우리 아들이 융통성이 없어서, 사회에 나가서 사기 당하는거 아닐까 몰라"
내게 시럽의 첨가 유무를 묻던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나는 어머니의 걱정이 떠올랐다.
"그래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는 세상인데. 주문한 커피에 시럽까지 추가된다면 아마 내가 지불해야 할 금액은 더 커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은 전보다는 조금 더 놀란 모습이었지만, 이내 알겠다는 듯 내 카드를 받아 결제를 진행했다. 어린 나이에 커피를 마시면 머리에 피가 마른다는 생각에 한 모금의 커피도 마시지 않던 내가, 이제는 성인이 되서 이렇게 스스로 커피를 주문하다니. 스스로가 뭔가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이람. 약 1분 정도를 기다려 받은 커피는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커피 한 잔의 양이 이렇게나 작다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당혹감이 몰려왔다. 커피값으로 3천원 정도는 지불한 것 같은데, 양으로만 보자면 고3 시절 친구들이 도서관 앞 자판기에서 2백원에 뽑아 마시던 밀크커피 한 잔의 양과 비슷한게 아닌가.
속으로는 어딘지 모를 억울함이 밀려왔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내 생각을 그대로 말로 표현해버리면, 내가 카페에서 커피를 처음 마신다는 사실이 들킬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 막 '어른'이 됐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어딘지 부끄러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구석 자리에 앉은 나는, 방금 전 받아온 커피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한 번 마셔나 보자"
이왕 벌어진 일인 것을 어떡하겠나 싶어서 나는 얼마 안되는 양의 커피를 아껴 먹을 심산으로 입 안에 아주 살짝 밀어 넣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맛이람. 어릴때부터 하도 한약을 챙겨 먹던 탓에 이제는 쓴 맛이라고는 모르고 살 줄 알았던 내게, 그 때의 에스프레소 한 잔은 정말 세상의 모든 쓴 맛을 한 곳에 응축한, 도무지 사람이라고는 마실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이걸 다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지불한 금액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이라고 생각했던 커피는, 오히려 이 정도 양도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당시에 나는 카페에 비치된 물을 마시는 것도 다 돈이라고 생각해서, 테이블에 혼자 앉아 눈 앞의 에스프레소 한 잔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다.
'이걸 다 마셔버리면 내 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남기고 가기에는 돈이 아까워. 땅 파봐, 어디 100원짜리 하나 나오나'
결국 나는 커피를 남기는 것을 선택했다. 뭐랄까, 돈 앞에 장사 없는게 아니라 건강 앞에 장사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군대를 전역하기 전 까지 내게 커피란 결국 '맛 없는 음료'라고 정의되어 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