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조한 봄날에...
지난 주말에 앞산에 불이 났다. 그 전날 밤 뉴스에서 앞산에 불이 났다고 했다. 불은 건조한 봄 날씨를 따라 급속히 번져 나갔을 것이다. 베란다에 서면 앞산이 동서로 하염없이 흘러가곤 한다. 바람으로 흐르거나 꽃잎으로 흐르거나 자동차로 흘러가기도 한다.
흐르는 것은 다 희망적이거나 다 부질없기도 하다. 어디로 흐르는지가 보이면 그 흐름의 온도가 보일 때가 있다.
시야의 서쪽에 저수지가 있고, 시야의 동쪽에는 불씨가 있다. 그래서 그런가 서쪽은 희망을 향해 흘러가는데 동쪽은 불안을 향해 흘러간다. 희망으로 가는 물동이는 비어 있고, 불안으로 가는 물동이는 꽉 차다 못해 넘칠 지경이다.
비우면 희망으로 흐르고, 채우면 다시 불안으로 흐르는 저 공중의 강줄기는 마치 인생을 낙서하는 것 같다.
이런 허튼소리를 하다니, 어젯밤 앞산에 큰 불이 났다는 말이다. 오늘 아침 자동차 행렬과 초록 능선 사이로 하늘을 흐르는 헬기들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헬기 아래
곡예하듯 허공에서 철렁철렁 비틀거리는 물 양동이들은 차마 할 말을 못 할 지경일 거다.
눈앞에 보이는 다급한 광경을 그야말로 불구경하듯이 불구경하고 있는 베란다의 시선은 부끄러워 붉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