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오는 날의 이야기
오랜만에 옛 지인들을 만났다. 그래봤자 나 포함해서 딸랑 셋이 전부다. 그중 한 명이 지난 2월에 남미 여행을 떠나 얼마 전에 돌아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비는 어떤 색의 물감을 풀어내든 그 속에 스며들어 그의 색이 되어 준다.
슬픈 마음에 내리면 눈물이 되고, 설레는 마음에 내리면 달달한 카페모카가 되고, 흡족한 마음에 내리면 진한 과테말라 핸드드립커피가 되고, 답답한 가슴에 내리면 알싸한 캔맥주가 되고, 지긋지긋 억눌린 가슴에 내리면 걸쭉한 막걸리가 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심장에 내리면 독주가 된다.
그럼 오늘 내린 이 비는 뭘까?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에 내린 걸로 치면 글쎄 허물없이 잔 기울이는 포차의 소주 같다고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페루. 2개월 동안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보여 주면서 “이땐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어요.”, “이땐 파도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어요.”, “이땐 빙하가 막 밀려와서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등등 순간순간의 기억을 되살려 전해 주었다.
신기한 것은 사진 속의 그는 시종일관 평온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뒤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남미의 사람들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게 사진인가 보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서 귀로 들려오는 그 순간의 상황에 대한 묘사는 사진 속의 인물과 풍경과 마음들이 살아서 나의 눈 속으로 심장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 했다.
사람의 말이다. 사람의 소통이다. 살아 있다.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