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드는 생각

by 올제

시를 쓰고 나면 나는 축구경기에서 주요 장면을 놓쳐버린 카메라맨이 된 기분이다. 분명 손흥민선수가 멋진 골을 만들어내는 황금 같은 순간을 촬영했는데 재생 버튼을 누르면 골라인을 묘하게 피해나간 영상이 돌아가는 거다. 이게 뭐지? 아까 너무 흥분해서 폴짝폴짝 뛰다가 카메라가 흔들렸나 나는 정작 촬영하느라 제대로 명장면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카메라는 이 외곽의 잔디와 벤치와 관중석만 담고 있는 거다. 시를 쓰기 전에는 결혼식 뷔페에서처럼 넓은 접시에 이것저것 무질서하게 음식을 담아 적당히 자리를 찾아 앉는 정신없는 하객이다. 시를 쓰고 나면 소란스러운 뷔페에서 어디로 음식이 들어간 줄 모르는 여전히 정신없는 하객이다. 막상 음식을 먹어보면 딱히 맛있는 것도 아니면서 종류만 많아서 제 맛도 모르겠고 포만감도 없으면서 아까운 음식쓰레기만 남기는 거다. 머릿속의 울림이 있던 그 상상 속의 입체적인 나의 시는 A4 용지 한 장 속으로 납작하게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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