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유모차와 할머니

by 올제

길 지나는 저 할머니는 아마 허리를 곧추세우기가 힘들고 다리에 힘도 없을 것이다. 어림잡아도 80은 넘으신 것 같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 왔을 때는 태어나서 한 돌 지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게다가 기다리지도 않았을 딸인 경우가 많아 나면서부터 차별에 익숙했겠다. 걸음마를 스스로 배운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시절에는 할머니의 엄마 등에 업혀서 재래식 부엌과 논밭과 빨래터를 오가며 어깨너머로 밥 짓는 일, 밥 벌어먹는 일, 옷을 빨아 입는 일을 스멀스멀 배웠을 것이다.


바퀴 달린 차를 타 보았을 리 만무하다. 할머니가 스무 살이 될 즈음 얼굴도 모르는 오늘날의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고 할머니의 딸을 낳았을 것이다.


금지옥엽 사랑스러운 할머니의 딸은 할아버지의 엄마에게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기가 낳은 딸을 등에 업고서 포대기를 질끈 묶고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질끈 묶은 채 가열찬 아줌마의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재래식 부엌을 오르락내리락했을 것이다. 인형 눈 박는 부업을 했거나 홀치기(우리말인지 일본말인지 모르겠다)를 하느라 어깨가 휘어졌을지도 모른다.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아이의 무게를 느끼며 빨래를 치댔을 것이다.


할머니의 딸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을 때 직장 다니는 딸이 낳은 귀한 손녀를 업어서도 키우고 유모차에 태워서도 키웠을 것이다.


할머니는 이제 스스로 걸을 수가 없어서 예전에 딸의 딸을 키우던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것이다.


할머니의 세월은 고스란히 등이 휘어서 걷는 일은 그야말로 큰일이 되었다.


유모차는 이제 할머니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며 동반자이다. 이게 웬만한 사람보다 더 든든하기도 하다.


딸의 딸이 타던 유모차를 버리지 않고 이제껏 창고에 보관해 둔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칭찬하면서 세워지지도 않는 어깨를 으쓱으쓱 올려 보며 길 지나는 할머니, 신명 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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