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여기는 인간의 세계이므로

어느 겨울날 논두렁을 걷다가

by 올제

고라니가 밭고랑에 빠졌다. 허우적거리며 올라오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뒷다리는 둘 다 부러졌고 앞다리는 하나가 부상이다. 하나뿐인 앞다리로 미끄러운 바닥을 딛고 계속 올라오려고 한다.


맞은편에서 개 한 마리가 측은히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보니 개와 고라니가 겨울 들녘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는 형상이다.


동물은 서로 다른 종끼리도 소통이 가능한가 했다. 인간은 같은 종끼리도 소통이 불가능한데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심각하다. 고라니는 목숨을 걸고 올라오려고 하고 개는 속수무책이라 안타까운 상황이다.


휘청! 저러다 지쳐 쓰러져 죽겠다 싶어 우리는 119에 전화를 했다. 낯선 시골 논밭에서 119가 올 때까지 그들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119 대원 6명이 철창으로 만든 이동식 우리를 가지고 도착. 아기처럼 살살 달래 가며 옮기려고 하는데 순간 따라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고라니가 마치 사람의 어린아이처럼 펑펑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온몸에 쓰린 전율이 일어났다. 여기저기 따끔따끔 아프고 저렸다. 귀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계속 맴돈다.


소방대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안락사시켜 줘야죠. 여기 있으면 저러다 밤에 죽어요. 그리고 마을사람들한테는 농작물을 훼손하는 유해동물입니다.”


아, 이 가엾은 생명이 누군가에겐 유해동물이구나.


우리 인간도 다른 생물체에겐 엄청난 유해동물일 것이다.




#고라니 #안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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