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전화기에서 선이 잘렸다. 무선의 스마트폰은 자유를 선물했다. 전선이 잘려 나간 자유의 몸으로 우리는 스마트 월드의 자발적인 수감자가 되어 버렸다.
오늘날 노모포비아(nomophobia)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할 사람은 있기나 할지 의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텅 빈 종이 혹은 노트북 화면에 뭔가를 ‘썼다 지웠다’하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겨 앉아 있는 것은 주변에서 이해받기 힘든 희한한 취미일 수 있다. 그래서 외롭다.
가수 김광석은 “널 사랑해!”를 ‘썼다 지웠다”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매일같이 이렇게 ‘썼다 지웠다’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자주 드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만 두자. 현실은 늘 이토록 팍팍한데 시를 써서 무엇할 것인가? 수시로 자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에 문을 두드렸고 다행히 입장권을 받았다. 마치 화려한 놀이공원에 처음 온 어린아이처럼 신났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지난 나만의 놀이공원은 잠시 현실을 잊게도 해주고, 또 잠시 현실을 깨닫게도 해준다.
회전목마와 같이 느리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글, 롤러코스터처럼 무섭고 짜릿하지만 아슬아슬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글, 범퍼카처럼 갑자기 쿵 부딪친 충격을 딛고 일어나 다시 달리는 사연들이 놀이공원의 퍼레이드처럼 끝도 없이 펼쳐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가 내 마음속 이야기를 나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갑자기 외롭지 않아 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며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나도 내 글을 발행했다.
스마트 월드에 산다는 것은 과연 아주 삭막한 것만은 아님을 느낀다. 많은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정보를 얻어서 좋다.
어떻게 이와 같은 글들의 놀이공원을 만들었을지 10년 전 땅을 고르고 터를 마련해 준 브런치에 감사할 일이다. 동시에 무려 10년 동안이나 이 공원을 모르고 혼자서 해 질 녘 잠긴 출입문 건너 텅 빈 놀이공원 앞에서 서성인 느낌이다.
'브런치'라는 이름은 '아침과 점심의 중간쯤에 먹는 가벼운 식사'라는 의미에서 한껏 따스하다. 늦었으면 아침으로, 이르면 점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여유로운 식사. 누구든 다가오면 숟가락 하나 더 얹어 주며 ‘함께 밥 먹자’고 말을 걸어올 것 같은 필기체 'b'를 기울인 로고가 아주 인상적이다. 마치 펜처럼 생겨서 정감이 있다. 그대로 똑 떼어서 잉크를 묻히면 거기서 시가 줄줄 쓰여질 것 같다.
필기체 'b'의 윗부분은 마치 귀를 쫑긋 세워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좋다. 나를 쓰고 타인을 읽고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타인의 이야기에서 나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다.
브런치를 먹듯 여유 있게 필기체처럼 귀를 기울여 내 마음이 불러 주는 시를 쓰고 싶다. 내가 쓴 시가 타인의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한 구절이라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의미를 새기고 싶다.
나는 이제 필기체 'b'처럼 한껏 몸을 기울여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느끼고 배우고 다시 습작을 하겠다. 비교적 늦게 일어났으나 아직 아침이라 생각하고 습작을 할까 한다. 아직 점심때가 되지 않았으니 시간이 충분하다 생각하고 습작을 하겠다.
언젠가 내 인생의 해가 질 무렵이면 그때는 새로운 아침을 맞으러 기분 좋게 삶의 펜을 놓을 수 있는 단단한 여유를 꿈꾼다.
브런치 작가의 꿈? 그게 결국은 잘 떠나는 연습을 하는 아주 큰 공책을 채우는 것이라고 쓸 줄은, 이 글을 시작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노모포비아(nomophobia)는 작동하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생기는 두려움이나 불안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는 정신건강 분야에서 문제성 디지털 미디어 사용의 한 증상 또는 증후군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기술적 및 유전적 이유로 인해 정의가 표준화되지 않았다.(출처: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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