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었더니 하루 종일 몽롱하다. 기운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침대에 누워 밀린 드라마를 볼까, 좀 더 잘까 하며 팔자 좋은 집순이 놀이를 하려던 참에 수변공원에서 좀 걷자는 전화가 온다. 반가운 마음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공원에 먼저 도착해서 걷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마침 문이 열린 칸이 있어 당연히 빈칸이라 생각하고 다가갔는데 안에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시는데 문을 아예 열어 두었다. 내가 너무 놀라면 무안하실 까봐 순간적으로 안 놀라는 척을 해야 했다.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럴 땐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지나쳐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친구를 만나 수변공원의 둑길에서 함께 맨발 걷기를 했다. 나는 맨발에 닿는 땅의 느낌이 너무 좋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불어 호수의 물과 하늘의 바람과 땅의 보드라운 흙이 마치 물감처럼 조화롭게 섞여서 기운이라는 그림을 맘속에 휙휙 그려 주는 것 같았다.
흙과 함께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호흡을 하다가 발을 씻고 가볍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묵집이 있는데 오늘따라 그 집에 오랜만에 가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식당의 화장실에 갔는데 바깥쪽에 공동 세면대가 있고 좁은 간격으로 화장실 두 칸이 있었다. 왼쪽에는 신사, 오른쪽에는 숙녀 표시가 있고 마침 신사 칸만 비어 있었다. 마침내 숙녀 칸에서 문을 여는 기척이 있고 문이 열렸는데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당당하게 거기서 나오시는 거다. ‘
여기는 숙녀 칸인데…….’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요즘은 독백의 쓸모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아까의 그 할머니처럼 이 할아버지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하시니 과민하거나 놀란 반응은 자칫 무례할 수가 있다.
오늘은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라고 두 번씩이나 이와 같은 일이 있나 보다.
누가 더 민망해해야 하고 누가 더 당당할 수 있나를 견주어 보면 무엇할 것인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당당한 것임을 느끼는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