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분석) 산유화

by 올제

山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山에

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山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山에서

사노라네


山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 「산유화 」



1. 음악으로서의 시

소월의 시는 그대로 동요가 되고 가곡이 되었다. 산유화는 많은 성악가들이 가곡으로 불러 귀에 익숙한 음악으로 먼저 다가와 있다. 그런데 시를 소리 내어 읽어 보니 이미 이 시 자체가 그 속에 음악성을 충분히 품고 있음을 느낀다.


우선 ‘ㅔ’ 모음이 11번이나 반복해서 사용되었다. 시를 읽으면서 어느덧 ‘ㅔ’ 모음이 주는 편안한 친근감에 젖어든다. 특히 ‘-하네’와 같은 종결어미는 눈앞에 벌어지는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옆 사람에게 속삭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화자와 함께 산에서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작은 새처럼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영화관에서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경험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제어인 명사 ‘산’에 붙은 조사들의 작은 변화가 가져오는 운율의 맛이 있다. ‘에는, 에, 에서, 에는’과 같은 순서로 바꿔 사용하며 매 연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준다. 또한 ‘꽃’을 그냥 쓰기도 하고 ‘꽃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는 시를 읽을 때 소리 내기 쉽고 음악적 리듬도 살아나게 한다. 음악을 염두에 두고 쓴 시가 아닐지라도 읽는 이는 마치 노래하듯 이 시를 읽게 되고 시인이 선사한 리듬감과 운율에 덩달아 산에 피는 꽃이 좋아지고 산에서 우는 작은 새의 맑은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다.



2. 형상화의 미(美)

총 4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다시 각각 4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 꽃, 새의 세 가지 대상이 시 속에 살고 있다. 두 개의 생명체인 꽃과 새가 그들의 안식처라 할 산에 살고 있음을 시의 형태로도 보여주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한글이 아니라 한자 ‘山’을 사용하였다. ‘山’은 상형문자로 마치 실제의 산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를 통째로 90° 회전을 하여 가로로 눕혀 놓고 보면 시어들이 마치 ‘山’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연의 마지막 행과 3연의 첫 행이 가장 높은 산꼭대기처럼 보이고 이 두 행을 기준으로 좌우로 푹 낮아졌다가 다시 1연과 4연에서는 중간 정도의 높이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山’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각적 이미지는 빠른 순간에 시 안의 세계로 빠져 들게 한다.



3. 산유화(山有花)의 의미

이 시의 제목이자 주제어인 산유화는 장미나 동백처럼 특정한 꽃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 모양과 향기에 상관없이 ‘산에서 피는 어느 꽃이든지’ 산유화라 부를 수 있다. 한자 뜻 그대로 ‘산에 있는 꽃’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선택인가? 앞마당이나 들이 아니라 ‘산’에서 피었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웅장함과 위대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우주의 먼지와 같이 작은 존재라고 하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 수만 년을 태어나고 죽고 사라져 가는 동안 산은 한 자리에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였다. 그와 같은 큰 자연 속에서 해마다 피어나고 지고 다시 피어나고 지는 일을 반복해 왔을 산유화는 마치 우리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새 생명으로 피었다가 반드시 지고 마는 삶의 여정과 같다. 게다가 쉴 새 없이 피어나고 쉴 새 없이 죽어간다. ‘일 년 내내’라고 하지 않고 ‘갈 봄 여름 없이’라고 표현하니 더 애절한 자연의 순환이 전해져 온다. 이와 같이 산유화는 산이라는 대자연 속에 끊임없이 탄생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며 산속에 산과 함께 ‘존재’하는 유한성을 가진 대상이다.



4. 고독과 공존의 양립

산에서 피는 모든 꽃의 총칭이 산유화라고 하면 산에는 산유화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이름만 대면 익히 아는 꽃도 있고,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무명의 꽃도 있을 것이다. 이름이 있든 이름이 없든 그들은 모두 ‘산유화’이다. 시 속의 산유화는 한 곳에 무리 지어 피어난 것이 아니라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다. 여기서 시인이 발견한 산유화는 ‘가깝지 않은 곳에 아득히 보일 듯 말 듯 홀로 외로이’ 피어 있는 꽃을 연상케 한다.


자칫 외로운 대상처럼 보이나 그 산에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작은 새가 함께 존재한다. 작은 새는 꽃에 대한 사랑과 정으로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산에서 살고 있다. 결국 산의 꽃은 변함없이 지고야 말 것이다. 자연의 변함없는 순환 속에 생명의 유한성을 슬퍼하듯 이 작은 새는 울고 있다. 하지만 꽃이 좋아 산을 떠나지 않고 산은 꽃과 작은 새를 언제든 품어 주고 언제든 놓아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시에서는 산과 꽃과 새가 하나하나의 외로운 존재이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지켜주고 품어주는 존재이다. 마치 우리 인간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많이 놀랐다. 주체로서 인간 개개인은 분명 고독하지만 고독한 객체로서의 인간은 갈등과 분쟁 속에서도 결국은 한 시대를 공존하는 것이 마치 산유화 같다. 두 개의 절벽처럼 대립된 언어로 보이는 ‘고독’과 ‘공존’이 양립할 수 있음을 ‘저만치 혼자서 피어난 산유화에게 산에서 우는 작은 새가 노래하는’ 듯하다. 문득 산에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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