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의 본성

by 올제

곱슬머리의 본성



나의 머리카락은 반항적이었다. 사내아이처럼 늘 커트를 하고 다녔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왼쪽 귀에서 강풍이 불었나 싶다. 왼쪽 뺨에는 머리카락이 붙으려고 난리고 오른쪽 귀에서는 머리카락이 얼굴에서 탈출하려고 난리였다. 덩달아 고개까지 갸우뚱해졌다. 누가 봐도 비딱한 사춘기 아이인 것 같았다.


나이 들어 뒤늦게 머리를 길러 보아도 머리가 길어질수록 마음의 기울기도 점점 더 가파르게 각도를 좁히고 있는 것 같다. 생머리로 살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가끔 뜨거운 열로 직선을 강제 집행하지 않으면 스스로 펴지는 법이 없다.


미용실은 곱슬머리를 가리기 위한 최상의 위장술을 집행하는 마법학교 같다. 곡선을 더욱 곡선답게 만드는 초강력 주문을 왼다. 반항기를 제거하고 흐르는 물결처럼 웨이브라는 것을 만들어 준다.


바다에 가지 않고도 매일 웨이브를 머리에 이고 지고 세상일에 무디어지고 있다. 그러려니 하며 살지 뭐 그런다. 생각을 배제한 순응이 가장 편리한 생존법이라는 것을 숙지한 웨이브는, 그러나 장마와 꿉꿉한 공기가 너무 두렵다.


여름이 무르익고 장마가 시작되면 웨이브는 비실비실 맥을 못 춘다. 가늘어진 머리카락들이 한 올 한 올 들고일어나 위로 위로 미세한 곡선을 곧추세운다. 갓 뽑아낸 파뿌리처럼 자질구레하게 꼬불꼬불한 머리카락들이 어수선한 숲은 이룬다.


덩달아 기분도 꾸무리하게 먹구름 지고 마음에도 장마가 시작된다. 세상에 벌써 순응한 거냐고 낱낱이 들고일어난 의병 같은 그들은 이제 뜨거운 열을 줄기차게 쬐어도 가라앉을 의향이 없는 극도의 반란을 일으킨다.


한 번쯤 들고일어나야지. 너도 그렇고 세상도 그렇고. 순응들이 모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반항들이 일어나 한 번쯤 뒤집을 때도 되었다.


장마가 끝나면 새로운 가을에 다시 웨이브가 살아날 것이라는 예감 정도는 습이 되었기에 이 여름의 꿉꿉한 고문은 참을 가치가 있다. 그러니 너의 본성대로 비뚤비뚤하게 들고일어나라.






#곱슬머리 #습도 #반골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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