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선 Sep 04. 2024

삶의 마감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

마포 애오개역 앞에 있는 오피스텔 한 호실을 갖고 있다. 거기에 5년간 세 들어 살던 김ㅇㅇ사장이라는 후배가 있었다. 어젯밤 늦게 김ㅇㅇ사장  전화로 본인의 부고장이 왔다. 본인의 전화로 부고장을 보내다니 장난 같아서 전화를 했다.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를 심근경색으로 병원으로 옮겼는데 두 시간 만에 숨을 걷었다고 했다. 며칠 전에 통화를 했을 때 이사를 가야 하는데  몸이 아파서 큰일이라고 했다. 기침을 하는 게 코로나 같으니 병원을 가보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죽었다니  좀 믿기지 않았다. 후배 김사장은 건장한 체격에 남자다운 외모지만 늘 성질이 급했다. 화도 많았다. 하려고 하는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많은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가끔이지만 식사도 같이 했다. 그때마다 곧 잘될 거라고 큰소리를 치곤 했지만 들어보면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늘 무지개를 쫓는 소년처럼  살아온 인생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가져 봤지만 현실과 많은 차이가 느껴 집을 나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아왔다. 잘되면 금의환향하듯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몇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더 어려워졌다.  점점 화만 늘어갔다. 결국은 모든 게 죽음으로 끝났다.

그 후배의 삶을 돌이켜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내일의  꿈 만 꾸다 끝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간다. 우린 그걸 희망이라고 한다.

그 희망이 오늘의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게 한다.

하지만 내일의 희망을 맛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난 내일의 희망보다 오늘 하루가 더 어제보다 나빠지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누구나 주인공 감정에 이입해 보기가 쉽다. 주연이 아닌 조연이나 엑스트라 같은 배우에 감정을 이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의 현실은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의 삶이다. 내가 주인공 같은 삶을 살려면 많은 걸 내려놓고 스스로 자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언젠가 죽게 되어있다. 힘들고 쫓기듯 사는 삶 일지라도

가끔은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자신을 보듬어 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주인공같이 사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다보는 시간이 나를 찾는 시간이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거나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나를 위해 요리를 하거나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때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모든 걸 남 탓을 하고 사회를 원망을 하고 꿈을 포기를 하고 낙심하면 그때부터 사는 게 더 힘들어진다. 남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사는 게 인생이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다. 오늘 땀 흘려 노력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진다는 것은  진리이다.

나아지는 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일을 기대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또 그러다 죽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게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인지 모른다.

어느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오늘 난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것처럼 오늘  할 일을 다하고 사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오늘을 잘 살면  오늘이 하나하나 모여  점이 모여 직선이 되듯  내 인생도 잘 산 인생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 자신의 목숨은 끊어 내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죽기까지 노력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뭔가 할 것을 찾아 한다면 더 낫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악착같이 안 쓰고 모우며 살아도 죽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후배의 죽음으로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숲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