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
1925년 일본에서 있던 이야기입니다
동경대학 노교수가 제자에게서 아끼다견 새끼한마리를 선물 받습니다.
제자가 집에 왔을때 마침 기르던개가 죽어
교수부부와 외동딸이 슬퍼하던것을 보고 자기네 시골에서 태어난 강아지를 선물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교수와 부인은 기르던 개와 이별하는게 싫어
또다시 개를 기른다는게 마땅치 않게 생각했지만
딸이 좋아해서 그냥 기르기로합니다.
하지만 딸의 급작스런 임신으로 결혼해서 떠나버리고
어쩔수 없이 교수가 어린 강아지를 맡아 기르게 됩니다
외동딸의 결혼으로 허전해진 마음을 강아지에게 쏟으면 애정을 갖고 자식처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다리모양이 팔자로 생겼다고 하치라고 이름을 짓게 됩니다
하치가 몆개월 크면서 교수를 따라 아침마다 역으로 배웅을 나가고 퇴근할시간이면 역으로 마중을 나갑니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웅과 마중을 하는 하치를 교수는 손자보다 더 귀여워하며 친자식처럼 사랑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수는 수업도중 심장마비로 죽게됩니다
장례을 치루던 날 하치는 빈소까지 찾아와서 슬프게 웁니다.
장례가 끝나고 교수부인은 살던집을 팔고 딸네 집으로 가면서 하치를 먼곳에 있는 친척집에 맡깁니다.
하지만 하치는 살던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집은 이미 다른사람에게 팔렸지만 하치는 노 교수가 올시간을 맞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역에나가 노교수를 기다립니다.
그렇게 3년이지난 어느날 아사이 신문에서 취재를 해서 그내용이 기사가 납니다.
노교수의 아내가 신문을 보고 역으로 왔을때도 하치는 노교수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교수 부인과 하룻밤을 보내 하치는 어디론가 살아집니다.
노교수의 부인이 자기를 딴데로 보낼까 걱정되어서 부인을 피한거지요.
며칠을 찾던 노교수의 부인은 역앞에서 포장마차른 하는 주인에게 하치가 오면 먹을것이라도 주라면 돈을 조금 전해주고 떠납니다.
하치는 점점 지저분한 떠돌이개가 되어갑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일으키기 전1935년 겨울 눈이 내리던 겨울날 역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쓸쓸히 죽어갑니다
하선재에도 올리와 샬롬이라고 길르는 진돗개가 있습니다. 올리는 호구이고 샬롬이는 흑구 진돗개입니다.
호랑이 줄 무늬가 있다고 해서호구 또는 호피견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직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주일 동안 함께 있지 못하고 목요일 밤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함께 있습니다.
이웃집에 사람이 있어서 돌봐주긴 해서 다행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오는 목요일이면 좀 높은 곳에 올라 올라오는 찻길만 바라보고 있답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 늦을라치면 제 차소리만 듣고서도 멀리서 뛰어 내려옵니다.
신통하게도 제 차소리를 기억하는거지요.
그리고 반가움으로 마구 달려들어 옷버리기 일수입니다.
얼굴을 핣기도 합니다.
주인을 알아보고 정이들고 사랑한다는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같습니다.
그래서 못된 사람 보고는 개만도 못하다고 하기도 하지요.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서로의 교감은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지 미워하는지 다 알지요.
그래서 개도 정들면 가족같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어지는것도 많이 아픔니다.
지난번 서울집에서 14년 동안 길르던 개가 죽었을때
많이 마음이 아펐습니다.
정을주고 사랑을 준다는건 헤어짐에 슬픔도 함께 내재되어 있는겁니다.
그러기에 있을때 하나라도 더 잘해주는게 중요합니다.
그대상이 기르는 개뿐 만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가족은 더욱 마음이 아픔니다.
많은것들과 인연을 맺고 헤어지는것 그게 사는것일겁니다.
늘 언제나 그자리에 있을것 같은 그사람이 갑자기 떠나 버린다면 참으로 허전하고 빈구멍을 메우기 까지
생각나고 보고싶을겁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우리는 만나는것보다 헤어지는일이 더 많아질테고 그만큼의 슬픔을 견더야 합니다.
그게 사는거고 인연맺는 거라면 항상 내앞에 있는 대상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대상과 헤어져도 조금이나마 덜 서러울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