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쓰듯 지은 하선재

내가 묻힐 곳 그 땅

by 김재선

요즘 도시 사람들은 사는데 많이 지쳐 있다.

그만큼 세상 사는 게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주 5일 근무가 시작되면서 주말이면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이 고속도로를 가득 채운다.

도시를 벗어나려는 마음에서다.

자연과 더불어 쉼을 갖겠다는 생각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쉼을 준다. 그것은 모든 것이 느리기 때문에 가능하다.

텔레비전도 꺼놓고 휴대폰도 꺼놓고 천천히 걸으며 숲을 바라보고 들꽃을 바라보고 걸을 때 빠르게 뛰던 맥박도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음도 차분해진다.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볕이 뭐엔가 쫓기는 자세로 웅크리고 살아오던 등을 펴지게 한다. 맑은 공기와 푸르른 하늘은 덤이다.

오염되지 않은 샘에서 나오는 맑은 물은 생명수다.

그런 게 좋아서 사람들은 시골을 찾는다. 하지만 시골생활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늘 또 다른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 그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일 년에 사만 명 정도인데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이 삼만 명 정도 된단다.

그만큼 시골에서 정착하는 것이 어렵다. 정착하기에 여러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걸 충족시키기 만만치 않다. 그건 정착하려는 사람의 마음 가짐에서 시작한다. 시골에 산다는 것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런데도 시골에 정착하려는 용감한 부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58년생 동갑내기 부부의 이야기다.

아무 연고도 없는 충주 앙성면 산속에 집을 지었다. 그것도 남들이 주저하는 자재를 갖고 어렵게 집을 지었다.

58년생 남편은 서울 토박이로 서울에서 일찍 사업을 시작해서 큰 부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수성가적 사업가다. 부인은 미술을 전공하고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지금은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주부이다.

그들은 대학 일 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함께 과외지도를 해가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졸업반 때 지금의 남편이 군대를 가고 그 군대가 있는 시간에 아내는 패션 의상 공부를 하고 의상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발디딤을 한다.

제대를 하고 그들은 어렵게 결혼을 한다. 정말 가진 것이 없이 결혼한 생활을 늘 힘들고 피곤했다.

결혼하고 두 딸을 낳고 힘들게 8년 만에 자기 집을 마련했다. 변두리에 조그만 주택을 그것도 전세를 안고 사서 바로 입주를 못하고 전세금 빼 줄 돈을 이 년 동안 더 모아서 힘들게 입주하게 된 집이다.

집이 워낙 오래된 집이라 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마루에서 조차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이었다.

그들은 7년 후 조금씩 모은 돈으로 새로 집을 지었다. 얼떨결에 짓게 된 집이지만 그 동네에서 한동안 이쁘다는 소리는 듣는다.

하지만 그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이사 간 곳은 마포의 한 강변아파트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여의도가 맨해튼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산지 10년 만에 남편은 원치 않은 암에 걸린다. 그동안 죽도록 일만 했던 결과다.

남편은 그때부터 산을 찾았다. 그런 남편을 위해서 아내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시골에 작으면 한 한 집을 구한다.

두려움 반 기대 반의 처음의 시골생활에서 얻는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은 기대 이상 좋아지고 있었다. 시골생활 3년이 지난 후 남편은 다시 집을 옮기려 한다.

이웃들이 전부 도시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서 주말이면 조용히 쉬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주말에만 내려오는 도시 사람들은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하면서 노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늘 시끄럽다.

그래서 다시 조용한 곳으로 옮겨 가려고 한다. 하지만 조용한 곳을 찾으니 문제가 많다.

우선 도로를 내야 한다. 전기가 들어와야 한다. 물이 있어야 하고 오물을 버려야 한다. 이런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경치가 좋은 곳이라도 집을 지을 수 없다. 이런데 집이 지어져 있는 것을 사면 제일 좋은데 그런 집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은 그런 곳을 찾아 직접 집을 짓기로 했다.

거기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 길도 전기 물도 혼자 다해 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삶을 보내기 위해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 부부는 서울 아파트를 정리하고 남은 삶을 보내기 위해 집을 짓기로 했다.

그래서 집 지을 땅을 알아보다 구한 곳이 지금의 땅이다.

분당에 사는 사람이 펜션을 짓기 위해 이십 년 전에 삼만 평을 사둔 땅이었다. 현재 그곳에 펜션이 5동이 있지만 주인들이 사정이 생겨 운영을 하지 않고 모두 전세를 놓았다. 남은 땅은 분할해서 전원주택지로 팔기로 했다.

그러니 기존에 만들어진 길이 있어 우선 길은 해결되었고 전기도 들어와 있으니 연장해서 끌면 된다. 다만 물은 지하수를 파야 한다.

그들 부부는 맨 위쪽 국유림과 붙은 땅을 보지도 않고 계약했다. 땅 파는 지주조차도 의아해했다.

그곳에는 40미터의 낙엽송들이 수십 그루가 자라고 있어 햇볕조차 잘 안 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집 짓기는 좋은 조건이 아닌 땅이다. 방향도 동북향이고 겨울이면 바람도 엄청 부는 곳이다.

하지만 부부는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이 땅이 자신들의 집 지을 땅이라는 것 느꼈다. 그곳에 있으면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하고 아늑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유학하고 온 후배 홍대 건축과 교수에게 그 땅을 보여주고 디자인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 교수는 현장을 보더니 집짓기 힘들다고 땅을 팔라고 했다. 다시 고대 건축과 교수인 후배에게 그 땅을 보여주고 디자인을 부탁한다. 그 교수는 현장을 보더니 재미있는 집이 나올 것이라고 디자인을 해 주겠단다. 부부와 그 교수가 만난 지 일곱여덟 차례 디자인이 수정과 보완이 되기를 수차례 드디어 집의 디자인이 정해 졌다.

지을 집은 총 41평 이층이다 일층은 콘크리트로 이층은 목조주택으로 유난히 많은 창호 때문에 건축비는 조금 더 올라갔다.

그래도 난방보다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 좋아서 창을 많이 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많은 창문은 하나하나 액자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 사방을 다 볼 수 있는 집이되었다.

남편은 커다란 고로쇠나무를 심었다. 그 밑에 나무벤치를 놓고 가로등을 설치했다. 고로쇠나무 밑에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묻힐 곳이라 했다. 시집간 큰딸에게 미리 유언을 해두었다. 선교사로 헌신한 두 딸은 다 해외로 나갈 것이지만 쉬러 국내에 들어오면 이곳에서 쉬면서 벤치에 않자 차 한잔 하면서 아빠 엄마 생각하라고 ,

그래서 부부는 아이들이 자주 찾을 수 있게 리조트 같은 집을 지으려고 했다. 일층엔 게스트룸과 거실이 있다.

화장실도 별채인 게스트룸에 붙여 놓았다

이층에는 부부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쓰기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통유리창으로 만든 서재가 있다.

욕조는 부부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히노끼 욕조를 설치했다.

이들은 이 집의 이름을 하선재라 했다. 하선재는 하나님의 선물인 집이라는 뜻도 있지만 하늘과 선이 닿은 집이라는 뜻도 있다. 남편과 손자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하선재라고 하기도 한단다 손자까지 물려줄 셈인가 보다. 그래서 정말 튼튼하게 지었다.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부부가 지은 집은 주택저널 2015년 1월호에 자세하게 사진과 같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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