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첫눈이 내렸다
세상이 온통 하얘졌다
첫눈이 내리면 누군가 만나고 싶어 지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같은 장소에서 첫눈을 맞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첫눈이 왔으니 누구에게 만나자고 연락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첫눈이 오면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누군가 운명적으로 만나야 할 것 같은 낭만을 첫눈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계절적인 변화의 새로움인지 아니면 한 해가 다 지나가는 아쉬움 때문인지 몰라도 왠지 허전한 마음이어서 더 그럴는지도
모르지만 첫눈이 내릴 때쯤이면 뭔가 특별한 것이 기다려진다
기억에 남는 첫눈 내리던 때가 있다
삼 년 전 겨울이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의 유골함을 제천의 자그마한 절에 보관시키던 날이었다
서울에서 늦게 출발한 나는 먼저 화장터에서 출발한 일행보다 뒤늦게 도착할 것 같아 조바심 나는 것을 달래며 운전을 했다. 거의 도착할 즈음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만치에 보이는 하얀 눈으로 덮인 작으면 한 절의 모습은 마치 흰 소복을 입은 여인네 같았다. 외로운 미망인처럼 슬픔을 꾹 참고 눈물만 흘리는 것 같았다 앞이 안 보일 만큼 쏟아지는 눈도 서럽게 이별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그해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누 군든지 첫눈에 얽힌 사연쯤 한두 개씩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눈 하면 설렘임도 있고 기다림도 어떤 기억도 있을 것이다.
내가 첫눈을 기다리는 것은 올 한 해 부끄러웠던 일들을 마음 상했던 일들을 눈으로 다 덮고 싶어서일 게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해의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일까?
나이가 들면서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밝고 온 눈길의 발자국은 흐트러지지 않고 똑바로 났는지 돌아다보게 된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남들에게 흐트러진 발자국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일까?
다시 첫눈이 내리고 모든 것이 덮이면 새로 시작할 희망이 있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겨울은 춥다 춥기 때문에 두꺼운 옷을 입고 그 옷으로 몸을 가린다. 그러면 나 자신이 덜 노출되고 덜 드러날 것 같다. 숨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숨기고 싶은 게 많다.
젊어서는 첫눈이 오면 만나자는 약속들을 많이 한다. 첫눈이 오면 군밤을 한 봉지 사서 만나기로 한 그녀를 기다려본다.
하지만 지금은 나는 그런 약속할 사람이 없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거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부터 늙기 시작한 것 같다
약속은 없어도 첫눈이 오면 누굴 만나고 싶어 지는 설렘임 있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누군가와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보고 싶다.
첫눈은 만남의 기대가 있다.
어느 해 첫눈이 내리던 날 등산을 하고 있었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지만 곧 빈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이 탐스런
눈꽃을 피어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얀 나무들의 무성함은 정말 장관을 이룬다 푸른 숲에 결코 뒤지지 않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눈에 대해 아름다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전방 군 시절 눈이 오기 시작하면 눈 치우고 길 내는 게 하루 일과다. 그때는 눈이라면 끔찍하고 첫눈이 내리면 두고 온 애인 생각보다 고생문이 열린다는 생각에 더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입시생들에게는 진로의 갈림길에서 고뇌함이 있다.
첫눈은 누구에겐 아름다운 추억이고 누구에겐 고생스러운 추억이겠지만 다 같이 첫눈에 대한 기대가 있다.
첫눈이 내리고 나면 곧 해가 바뀌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모두 덮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계획이 있기에 첫눈은 아름답고 기대가 된다.
첫눈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기대되는 설렘이 있다.
따뜻한 커피를 나누며 이야기하고픈 사람에 그리움이 있다.
첫눈에는 따끈한 아래 목에서 군고구마 먹던 즐거움 있고 눈썰매의 추억이 있다.
첫눈에는 연탄불과 동치미 국물의 추억이 있다
아래 목 이불속에 넣어둔 밥그릇처럼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이 있다.
첫눈은 그리움과 많은 생각과 추억을 열고
가슴을 따듯하게 채우는 행복의 열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