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홍소의 단풍

익어가는 세월

by 김재선



가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풍이다.

단풍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많이 봐왔지만 우리나라의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 설악산에서 시작되는 단풍은 날씨가 추워질수록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내장산을 통해 백양사를 거쳐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까지 가을빛이 번지고 나면 온 나라는 단풍의 절정을 이룬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km의 주능선을 근간으로 펼쳐지는 단풍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피아골 뱀사골 백무동 계곡 칠선계곡을 위시한 12 계곡을 따라 단풍이 물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12폭 치맛자락에 수놓아 가는 듯하다. 그중에도 단연 으뜸은 피아골 단풍이다.

피아골은 옛날 연곡사의 많은 승려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친 땅에 피를 심었던 피밭골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다. 그 피아골 단풍의 백미라 할 것은 삼홍소의 단풍이다.

조선시대 남명 조식 선생은 피아골의 단풍을 보지 않은 이는 단풍을 봤다고 할 수 없다 하면서 "산이 붉게 타니 산홍이요 단풍에 비친 소(작은 연못)가 붉으니 수홍이요 골짝에 들어선 사람도 단풍에 취하니 인홍이요"라는 삼 홍시를 남겼다.

그 삼홍소 앞에 서서 단풍으로 물든 붉은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단풍으로 물드는 것 같다.

6.25 때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이곳에서 피 흘려 죽어서인지 유난히 더 붉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총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들 같은 구상나무들을 바라보면 마음까지도 애잔해져 온다.

삼홍소에서 시작해 구계 포계 곡까지 단풍길을 따라 오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그저 아름답다 말 외 달리 할 말이 없다. 몇 년째 단풍철이면 이곳을 찾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늘 동행하는 이는 다르지만 한 번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이는 없었다. 감탄의 연발이다.

창조주의 솜씨는 위대하다. 자연 앞에선 우린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지식도 명예도 아름다움도 자연 앞에선 자랑할 만 것이 못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움 그것이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 아쉽다.

사람들은 늘 욕망을 가지고 도전하지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보다 아름답고 좋다.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난 꼭 삼홍소에 들려 단풍에 취해보고자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남명선생 말대로 나도 점점 단풍이 물들어가는 게 아닐까?

이제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그날까지 멋진 단풍으로 살아 볼까나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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