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폐암에 걸려 산으로 요양을 들어간 후
소식이 끊겨 모두들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가 내가 아프단 소식을 듣고 추석명절에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느닷없이 찾아왔다.
난 몸이 안 좋아서 술 끊은 지 오 년째가 돼가지만
그 술을 세잔 마셨다.
첫 잔은 술이 고파서 마셨고
둘째 잔은 그동안 병시중 드느라 고생을 한 아내를 위해 마셨고
셋째 잔은 그 친구가 살아 돌아온 것 을 위해 마셨다.
그렇게 세잔을 친구와 마셨더니 갖고 온 막걸리 한 병이 다 비어졌다.
오랫간만에 마신 술이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한다
요란한 풀벌레 소리에 가을은 깊어만 가고
그렇게 세월은 익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