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신에게 요리해 주는 남자

냉장고 비우기

by 김재선

휴양차 횡계로 내려온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고 생일이 되었다. 여느 때 생일 같으면 가족들, 친구들과 식사라도 하고 축하했을 텐데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이 만나서 식사라도 하자고 했지만 밥 먹자고 서울까지 갔다 오는 것도 번거롭기도 하고 많은 시간이 들어 됐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래도 안 되겠는지 용돈을 보내왔다.

혼자서라도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친한 친구들도 몇 있지만 한 친구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우울해하고 다른 친구는 코로나 때문에 답답한 시간을 보내다 여행이 풀려 가족들과 싱가포르 여행 갔다가 코로나에 걸려 격리 중이고 또 다른 친구는 그동안 별러왔던 터키 여행 중이라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도 없었다.

아내도 서울에 일이 있어 떠나고 없는 생일날 아침에 물끄러미 창밖을 보다가 나 라도 내게 미역국은 아니더라도 맛난 것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사놓은 오징어, 굴. 새우등이 냉동고에 얼려져 있었다. 파프리카, 양파, 마늘, 양배추, 토마토. 레몬, 당근, 호박. 버섯, 파 등을 야채칸에서 꺼내서 해물야채 고추장 볶음을 하기로 했다.

재료들을 모두 꺼내서 깨끗하게 씻어 손질해서 먹기 좋게 잘라놓았다.

냄비에 올리브기름을 붓고 충분한 가열을 시킨 후 마늘과 파를 볶아서 기름 맛을 낸 후에 해물을 넣고 통후추와 함께 볶으면서 소금으로 간을 하고 썰어놓은 야채와 집사람 친구가 준 고추장을 서너 숟가락 넣고 물을 조금 넣고 볶는다.

바질, 파슬리 등의 향신료를 넣고 약간 졸인 듯이 짜글 짜글 하게 끓여주면 지중해식 고추장 해물 야채볶음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레몬 하나를 짜 넣으면 맛은 종지부를 찍는다.

사람마다 먹는 식성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한테는 훌륭한 맛이다.

아내가 있었으면 맛나게 먹어주었을 텐데 좀 아쉽긴 하네.

재작년에 담가놓은 머위장아찌와 김 조촐하지만 내가 내게 차려준 생일상이다.

후식으로는 커피를 내려서 한잔이면 된다.

내가 나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건 많다.

꼭 남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 틀린 말이다.

이기적이란 말과는 다르지만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소중하게 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내가 행복한 게 먼저인 거다.

오늘 난 누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름도 모르는 꽃 야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