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19]
동화그림책 '막대기 아빠'.
이 그림책은 가족을 떠난 막대기 아빠의 모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금자리나무에는 막대기 아빠, 알뜰살뜰 엄마, 올망졸망한 세 아이가 한 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어느 날, 막대기 아빠가 아침운동을 나갔다 변을 당합니다. 개가 물어가면서 나무토막 장난감 신세가 된 것입니다. “난 막대기 아빠야, 막대기 아빠라고!” 아무리 소리쳐 보지만 사람들은 깔깔 웃으며 함부로 다룹니다. 밟히고 차이고 이리저리 던져집니다.
물에 띄워 보내기도 하고, 눈사람의 팔로 쓰였다가, 눈이 녹으면 길바닥에 버려지기도 합니다. 막대기 아빠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돌아갈 궁리만 하고, 아빠 없는 가족들은 크리스마스가 와도 즐겁지 않습니다. 함께 할 때 행복한 가족, 떨어지니 한없이 그리운 가족, 가족의 의미를 들춰 줍니다.
이 그림책은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교재로도 사용됩니다. 얼핏 보기에는 가족 사랑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한 겹만 들쳐도 또 다른 메시지가 있지요. 독후감은 대부분 ”평범한 가족이야기"로 모아집니다. 참여자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그녀가 오기 전까지는. 중년을 살짝 넘겨 보인 이 엄마는 “아버지들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짠했다”는 소감부터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보다 가족의 인생을 위해 살아야 하는 아버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막대기처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차이며 이 시대를 사는 고단한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맞아’ ‘그래요’ 공감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초면에도 그분은 자기 아버지의 얘기를 편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원래 사람이 좋으면 이용당한다고, 아버지는 모질지 못해 친지의 부탁에 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몽땅 날렸답니다. 이 뒤로도 손을 대는 일마다 뜻같이 안 되었다네요. 화병이 난 아버지는 술로 마음을 달래다가 알코올 중독이 돼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면 방에서 나는 술 냄새가 싫었고, 초점을 잃은 아버지의 눈빛에 질려 자신은 절대 술 마시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인생사가 생각대로 되면 좋으련만...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마시지 않던 술에 손을 대더니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생겼습니다.
그때만 해도 일이 잘 안되나 보다 이해하려고 애썼답니다. 하지만 한동안 집을 비웠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까지 잦아졌습니다. 그녀는 못난 자신을 한탄하며 황폐해져 갔습니다. 내 인생의 실패를 모두 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병상에 누운 아버지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상의 아버지가 슬픈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때, 아버지 인생도 참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용서’라는 단어가 스치더랍니다. 그로부터 ‘용서’가 마음에 자라면서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접고 아이들과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되찾게 되었다는 군요.
마음을 바꾼 후로 신기한 일은 남편도 술을 줄이며 가정을 챙기기 시작했답니다.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 하는데 능력은 안 되니 비겁하게 술 뒤로 숨었다는 고백과 함께. 그때 처음으로 남자도 두려움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막대기 아빠’가 단순히 가족 사랑만을 얘기하는 것 같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좀 더 산 사람으로서 젊은 엄마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다며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있다면 용서하고, 남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이기 전에, 남편이기 전에 그들도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자“고 권합니다. 그녀는 그림책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엄마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 준 셈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봇물처럼 터집니다. “그렇게 고단한 삶인 줄 몰랐어요. 내가 이기적인 아내였네요.”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늘 강한 분으로만 생각했나 봅니다.” “그동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에만 집착해 나만 피해자라 생각했는데 아버지도 가족이란 굴레를 쓰고 삶에 시달린 피해자군요.”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고 잘해 드려야겠다. 생각 없이 그림책을 봤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난 막대기 아빠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절규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것은 진실로 ‘용서와 화해’입니다.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