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는 여생이 아니다

by 이관순

노후는 여생이 아니다



이따금 우리는 세상을 다 산 것처럼 얘기합니다. 때로는 덤으로 산다는

얘기도 자주 듣지요. 살 만큼 살았으니 세상사 관여하지 않고 편히

살고 싶다는 뜻이겠고, 여한이 없다는 심적 바람이기도 하겠죠.


다른 한편으로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들리고,

이 나이에 무슨 요행이 있을까 체념이 비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앞날을 미리 예측할 만큼 예지가 뛰어난 동물이 아닙니다.


일진이 ‘좋았다’ ‘나빴다’라면서 희비에 젖음은 그만큼 앞일을 모른다는

방증입니다. 우리가 속단하는 낙관이나 비관은 인간의 능력이 앞날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니 그나마 잘 사는지도 모르죠.


인생을 곧잘 100m 경기가 아닌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마라토너는

42.195km를 완주하기까지 딴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페이스 유지에

전념합니다. 순위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완주가 목표이니까요.


몸은 달팽이처럼 느려지고, 기억력은 전 같지 않고, 아픈 데는 많다고

낙심하기 시작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집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내 인생의 주인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럴수록 삶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마지막 골인 점까지 정신 줄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삶의 시간은 처음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전 과정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것입니다.


인생에 덤이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되는 시간이 있다면 끝내지 못한

일을 마저 하라는 하늘이 내린 은총의 시간으로 받으세요. 덤과 은총은

생각하는 자세, 삶의 태도를 다르게 합니다.


황혼에도 열정을 나눈 괴테는 노인의 삶을 ‘상실의 삶’이라고 했어요.

다섯 가지를 상실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건강, 돈, 일, 친구, 꿈

말입니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년을 위해 괴테가 전하고자 한 것은

끝까지 꿈을 놓지 말라는 거였어요. 이를 위해서는 신앙생활이나

명상의 시간을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면 열광하는 청춘도 좋지만, 낙조로 물드는

서녘 하늘의 특별함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즐기며 살 일입니다.


이를 즐기려면 일단 건강해야겠지요. 건강하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건강은 젊을 때부터 다져 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훗날 가장 아프게 가슴에 와닿는 것이 건강입니다.


둘째, 돈입니다. 흔히 노인이라고 생각할 때면 이제는 쓸 때라고 하죠.

그래서 돈이 있어야 노년이 서럽지 않다고 말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돈 앞에 당당하라는 것이지요. 비굴해지지 말라는 겁니다.


셋째는 일. 당신은 몇 살부터 노인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년의

기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해요. 예전엔

억척으로 버는 일에 열중했지만 지금은 살뜰히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랑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사랑받는 기술이 아니라,

사랑하는 기술입니다. 예수님이 설파한 사랑의 본질도 같아요.


‘나눔’ ‘봉사’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 방법입니다. 받는 사람은

기쁨을, 나누는 사람에겐 보람을 안기니까요. 사랑이 넘칠 때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것이 내 연약한 모습을 알 때입니다.


넷째는 친구예요. 노년의 가장 큰 적은 고독과 소외입니다. ‘25시’

작가 게오르규가 말했습니다. “공포는 많은 사람들과 있으면 줄일 수

있으나, 정말 두려운 건 외딴섬에 혼자인 듯 한 외로움’이라고.


그래서 “노년을 같이 보낼 친구를 만들어두라. 이타적인 삶을 사는

친구를 가까이 하라. 이를 위해 시간, 정성, 돈을 들여서라도 부지런히

움직이세요. 친구를 자주 부르고 부름에는 꼭 응할 일입니다.


다섯째는 꿈. 노인의 꿈은 내세의 소망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어둠의 벼랑 끝에 홀로 선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어딘가로

들어가는 출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동요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희망이 없다는 것은 죄악.”

헤밍웨이가 노인이 되어 한 말입니다. 희망이 우리의 숨통을 쥐락펴락

합니다. 끝까지 꿈과 소망을 찾아 지키세요. 영혼의 구원을 찾는

신앙이 노년의 삶을 평안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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