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란 재앙 없는 삶을 이어가는 것

[4] 이관순의 손편지

by 이관순

정월 대보름. 어린시절 같으면 쥐불놀이로 가슴이 콩닥거릴 때입니다. 이제 2020년 세시 풍속도 막을 내렸습니다. 새해는 이미 낡아졌고 그 흔하게 주고받던 “복 많이 받으세요”란 축복인사도 열차 떠나간 간이역에 남는 정적처럼 가물거릴 뿐입니다. 우리가 덕담으로 주고받는 복에는 건강과 부가 함축돼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부자라고 다 행복하고, 가난하다고 다 불행한 것일까. <우아하게 가난해 지는 법>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부자의 기준을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 가진 것보다 더 원하면 가난' 이라고 쉽고도 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복이란 어떤 행운이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재앙 없는 삶이 이어지는 상태를 일컫는 말' 이라고 설파한 순자(荀子)의 말이 나이가 들며 더 공감이됩니다.


몇 해 전 새해 인사차 광명시에서 혼자 사시는 사촌형수를 찾았습니다. 대학시절, 군에서 제대한 후 갈 곳 없는 나를 2년 반 씩이나 거두어 주신 분입니다. 당시 공군 장교였던 사촌 형님은 지방의 한 비행단에 근무하면서 주말에 올라오는 생활을 할 때였지요. 남편도 집에 없는데 30대의 젊은 여자가 말 만큼 큰, 그것도 사촌 시동생을, 덥석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고맙다는 생각은 해왔어도, 큰 빚을 지었다는 생각은 한참 나이가 들어서였습니다. 몇년 전 새해를 시작하면서 내 나름의 '버킷리스트 50'을 정했었지요. 내가 신세를 지고도 무심하게 지나쳐온 분들을 리스트업해서 찾아뵙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1번이 그 형수님입니다. 안부야 묻고 살았지만, 빚진 마음으로 집을 찾아가 뵌 건 처음이었습니다. 한나절을 함께 옛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라했지요. 어느새 창밖의 아파트 앞 동(棟) 벽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짧은 겨울 해를 의식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형수님 만큼 아쉽기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웅한다고 아파트 현관을 따라 나온 형수님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더...., 저기까지만..., 한 것이 아파트 정문을 지났고, 시장을 건넜습니다. 마침내는 지하철 입구까지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이제 헤어져야겠네요. 또 올게요.” 나는 형수님의 손을 잠시 잡았다 놓은 후 등을 돌렸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한 번, 두 번, 세 번 째... 뒤를 돌아볼 때도 형수님은 위에서 손을 흔들고 서 계십니다. 가슴으로 미세한 전류가 흘렀습니다. 인생은 그래서 아름답고 애잔하다는 걸까. 나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새해를 맞아 형수님을 찾은 건 금년으로 두 번째입니다. 두 손을 잡고 새해 인사를 드리니 형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서방님, 나 올해도 한 살 더 먹는 선물을 받았답니다."

가식 없는 웃음이 해맑았았습니다. 오래도록 절에 다니셨던 형수님은 형님이 암으로 세상을 버리자 천주교 신자로 귀의했지요. 언젠가 전화통화에서 형수님은 레지오 활동으로 외로움과 시름을 잊는다고 했습니다. 덤으로 행복해지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지금도 행복하시냐고 되물었더니 "행복하고말고!. 해마다 잊지 않으시고 선물을 주시는데. 이 선물을 언제까지 주실지 모르지만." 하며 주름진 얼굴에 활짝 웃음꽃을 지폈습니다.


삶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애잔한가. 얼마나 소중하며 예측 불가한 것인가. 내가 사는 삶이지만 삶은 권리가 아니라 매일 위로부터 내려지는 선물이고, 나는 이를 관리할 뿐입니다. 선물이어서 귀한 것입니다.

삶이란, 집을 짓지 않는 다리와 같고, 제방에 들러붙지 않는 강과 같습니다. 여행자처럼 한 곳에 연연하지 않고 흘러가야 합니다.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다시는 되 만날 수 없는 시간들.... 그래서 삶은 경건해야 하고, 성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도 그 하루가 내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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