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24]
우리가 사는 두 세상
비대면과 디지털화가 가팔라지면서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종종
놀라움을 줍니다. ‘모든 기회에는 어려움이 있고, 모든 어려움엔 기회가
있다’고 믿어왔는데 지금의 이 어려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때때로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거꾸로 도는 시계가 있어요. 르네상스 발상지인
이곳 두오모 성당에 우첼로가 디자인한 시계가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늘이 오른쪽이 아닌 반대인 왼쪽 방향으로 돕니다.
이를 보면서 집단 양식에 반하는 것이 얼마나
낯선 것인가를 느꼈습니다.
인류의 오랜 삶의 양식인 먹고, 만나고, 일하고, 즐기고, 나누는 일체의
희로애락을 찾는 방식이 일순에 뒤바뀌는 아뜩함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비정상이던 비대면, 탈모임 같은 역방향의 양식으로
채되 가는 현실을 속절없이 바라봅니다.
좋든 싫든 2020년의 우리는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라는 두 개의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언택트는 일상이 되었고, 디지털과 마주하는 시간은
갈수록 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두 세계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합니다.
SNS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 자신을 잊고 지내는
순간도 함께 늘었어요. 엄연한 현실 속의 물리적 존재란 사실까지 살짝살짝
잊고 지냅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보면 이상한 나라에 빠지는
주인공이 있어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매력적인 판타지와 해학을 담아
아이들에겐 환상을 주고, 어른들에겐 시공을 넘는 철학적 의미를 전합니다.
전혀 낯선 세상에 가게 된 엘리스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는 정말
이상하고 신비한 이야기지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이 이런 건가.
가상과 현실의 두 세계가 복선처럼 깔려 듭니다.
엘리스가 고양이와 나누는 대화부터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고양이야, 여기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줘. 그건 네가 어디를 가고
싶으냐에 따라 달라. 아무 데든 상관없어 가기만 하면 돼. 그래? 그럼
어디든 가면 되잖아. 계속 걷기만 해. 계속 걷다 보면 그렇게 될 거야.”
목표가 없으면 우리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어요. 사는 게
혼미할수록 목표는 확실해야 합니다. 바다가 흉흉하고 풍랑이 심할수록
키를 놓치면 안 되는 이치와 같아요. 세상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을 열어주는 법. 좌표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우리가 겪는 이상한 세상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낙관만은
할 수 없는 현실이 불안감을 키웁니다. 이런 때일수록 내 삶의 중심을 잘
잡고 균형과 조화를 이룬 일상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멈춤이 없는 코로나 감염 확대, 부동산 폭등, 일자리 부족 사태, 의사파업,
세상 돌아가는 것이 모두 아픈 것 밖에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더 많은 희망과 따뜻함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방역복을 벗지 못한 방역현장의 의료진, 생명을 구하는 119 요원,
큰 물에 허물어진 집에서 생존의 땀을 흘리는 사람들, 무너진 제방을 쌓고,
수마에 휩쓸린 논밭과 과수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끈질긴 삶의
현장이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확진보다 더 무서운 건 심리 방역의 붕괴입니다. 경직된 얼굴, 시름에 쌓인
눈빛, 지쳐가는 내 모습에 균열이 생기지는 않는지. 이마저 쉽게 호소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1초의 짧은 말’을 자주 주고받는 일입니다.
*.. 고마워요... 말이 주는 따뜻함에 의지가 될 때가 있습니다.
*.. 힘내세요... 나는 누구인가의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 잘 계시죠... 언제 들어도 살갑고 편하고 좋은 인사입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새마을 중앙연수원을 진원지로 한
‘수·미·고 운동’이 벌어졌어요. 가난한 사람들 서로의 가슴에 신바람을
불어넣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 수고하십니다.
*.. 미안합니다.
*.. 고맙습니다.
1초에 기뻐하고 1초에 우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 번쯤 뒤돌아보고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두 개의 세상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을 나의 존재에 대해.